닫기

글로벌이코노믹

'K-반도체 위기‘…삼성·SK "한파 넘어라"

공유
1

'K-반도체 위기‘…삼성·SK "한파 넘어라"

D램·낸드플래시, 업황부진·가격하락에 수출액 한 달 새 30% 감소
삼성 "미세공정으로 초격차"…SK, 적층 낸드 등 고수익 제품 집중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출 효자'로 불리던 반도체 수출액이 단 1년 새 30% 가까이 감소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업황 악화가 수출액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지만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산업구조와 경쟁업체들의 성장, 미국을 필두로 자국 기업 우선주의가 부각되면서 'K-반도체' 위상이 단숨에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1월 반도체 수출액은 84억5000만 달러(약 10조9850억원)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29.8%나 감소한 수치다. 앞서 10월에도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7.4% 줄었다. 반도체 수출액 감소세가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업황 악화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감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면서 메모리 가격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제품의 지난달 평균 거래가격은 2.21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0.4% 낮은 가격이다. 낸드플래시 제품 가격 역시 평균 4.14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9% 하락했다.

반면 재고는 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재고자산이 57조3198억원으로 파악됐다. 상반기 52조922억원보다 10% 늘어났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재고자산도 14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0% 급증했다.

더 큰 문제는 업황 부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내년 반도체 시장 규모는 5565억6800만 달러(약 723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전망치인 5801억2600만 달러(약 754조원대) 대비 4.1% 감소한 수치다.

특히 WSTS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큰 폭으로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12.6% 감소한 데 이어 내년에는 17%나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쟁업체들이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 마이크론이 지난 10월 뉴욕주 북부 클레이 지역에 대규모 공장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이 곳에 1000억 달러(약 142조8000억원)를 투자해 대규모 메모리칩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2년 월별 반도체 수출액 추이(단위:억달러). 자료=산업통상자원부이미지 확대보기
산업통상자원부의 2022년 월별 반도체 수출액 추이(단위:억달러). 자료=산업통상자원부


파운드리에서는 삼성전자의 경쟁자인 대만의 TSMC가 중국 난징에 생산공장 라인 증설을 진행 중이다. TSMC는 난징공장에 28억8700만 달러를 투자해 라인 증설에 나서는 한편 독일 드레스덴 지역에도 신규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다.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량이 유지되면 가격은 더 낮아지고 재고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격 하락을 예상한 업체들과 소비자들이 관망세에 나서면서 가격 하락→재고 증가→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여기에 경쟁업체들이 대규모 증설에 나서고 있어 향후 공급량이 늘어날 것이란 점도 글로벌 반도체 업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주요 국가들의 자국 기업 지원책도 K-반도체의 위상을 흔드는 요소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기업들과 자국 내 반도체 공장들에 대한 지원에 나서면서 유럽과 일본, 대만, 중국 등도 같은 방식의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반도체지원법'을 논의했지만 아직까지 국회에서 공전 중이다.

수요 감소에 가격 하락, 업황 부진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일단 투자 축소와 생산량 감축에 나서는 모습이다. 일본의 키옥시아를 비롯해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마이크론 등이 내년 설비 투자 및 생산량을 30~50%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며 '초격차' 전략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인위적인 양산은 없다는 설명이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10월 진행된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인위적 감산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서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인프라 투자는 지속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감산 대신 현재 수준의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미세공정과 신제품 개발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5세대 10nm급 D램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낸드플래시 메모리에서는 2030년까지 1000단 V낸드 개발을 완료해 '초격차'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한 부사장은 "메모리 시장 상황이 쉽지 않지만, 신규 수요처 발굴과 대비가 중요하다"면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일단 감산과 함께 투자계획 재검토에 나선 모습이다. 지난 6월 말 충북 청주공장의 증설 계획을 이미 보류했으며, 계획됐던 설비투자도 줄이고 있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재고 수준이 높아 내년 캐펙스(CAPEX: 자본적 지출, 시설투자)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분야에서의 수익성 강화와 D램 신제품 개발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8월 현존 최고층인 238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한 만큼 이에 더 집중해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한편, 내년부터 본격화될 DDR5 등 고용량 제품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 측은 "내년 DDR5 시장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D램 등 신제품 양산을 위한 필수 투자는 지속해 고객 수요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