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국교정상화 후 한국 진출시 정부에 정유사업과 함께 요청
정부 반대로 제동. 1979년 호남석유화화핚 인수로 반쪽 성과
진출했다면 한국 제철사업 변화,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도 검토
19일 3주기 추모식, 신동빈 회장 등 경영진 등 소수만 참석할 듯
정부 반대로 제동. 1979년 호남석유화화핚 인수로 반쪽 성과
진출했다면 한국 제철사업 변화,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도 검토
19일 3주기 추모식, 신동빈 회장 등 경영진 등 소수만 참석할 듯
이미지 확대보기이를 바탕으로 박정희 정부는 제일동포 기업인의 고국 투자를 권유했다. 정부는 특히 롯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껌 등 제과사업을 대대적으로 성공시킨 롯데는 이미 한국에 진출했지만, 당시만해도 초보 수준에 불과했을 때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회장은 성장하는 일본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한국 사업은 동생들에게 맡겼다.
장기영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신격호 회장에게 군수사업 투자를 권유했다. 하지만 롯데에 대한 소비자의 이미지가 제과를 기반으로 하고, 남녀노소 모두가 선호하는 가운데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군수산업은 어울리지 않았다.
이에 신격호 회장은 정부에 정유사업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거절 당했고, 이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고로(용광로) 종합제철소 건설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요청했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는 경공업으로 성공했으나, 한국에서는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중화학공업을 키워보고자 했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흔히 대한민국 고로 일관제철사업의 성공 과정에는 박태준 회장의 포스코와 장경호 선대회장의 동국제강, 정주영 창업회장의 현대그룹 등이 이름에 오르내리지만, 롯데가 참여했다면 제철사업도 더 많은 대기업의 경쟁구도로 바뀔 수 있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도 제철사업 참여를 검토했었다. 대한민국 1호 철강기술자인 주창균 일신제강 창업 회장은 6‧25 전쟁 직후 회사의 모태인 신생산업을 경영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신의주보고) 동창인 신상초씨(후에 경희대 교수 역임)가 찾아왔다. 그는 이 회장이 자신을 보냈다며 주 회장과 사업을 합작하자고 제안을 했다고 알려줬다. 결국 지분 문제를 타결하지 못했으며, 합작은 무산됐다. 하지만 주 회장과 이 회장이 합작에 성공했다면 삼성의 초기 주력사업은 제분‧제당‧면방직 등 삼백산업이 아닌 제철사업이 됐을지도 모른다.
오는 19일은 신격호 창업회장(명예회장)이 별세 한지 3주기 기일이다. 중화학공업 진출 기회를 잃었지만 한국 롯데는 유통서비스 분야에서 국내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1979년에는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해 숙원이었던 중화학공업에 본격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호남석유화학은 아들인 신동빈 회장이 삼성의 석유화학 계열사를 인수‧합병해 롯데케미칼로 이름을 바궜고, 지금 롯데그룹 가운데 최고 매출을 기록하는 대표 계열사가 됐다.
신격호 창업회장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말은 ‘도전;이었다고 한다. 그는 “창업은 창조다. 도전을 멈추면 기업은 멈춤(그만)이다. 일하는 방식은 몰라도 되지만,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한편, 롯데그룹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고인에 대한 추모식을 조용히 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가진 2주기 추모식은 신동빈 회장 등 경영진들은 울산 울주군 선영을 찾아 참배하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마련한 고인의 흉상 앞에서 추도식을 가졌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