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 청동기 시대(FBA, 기원전 1200년~기원전 800년)와 초기 철기시대(EIA, 기원전 800년~기원전 600년)의 서부 이베리아에 대한 고고학적 역사는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왔다. 의인화된 인물, 동물, 무기의 이미지를 조각한 연대는 다양하게 남아 있다. 이전의 연구는 석재에 이미지가 조각된 것이 기원전 13세기에서 6세기 사이라고 추정했다.
고고학자들은 이베리아 석재를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매우 단단한 바위로 만들어진 조각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석재에 모양을 새긴 도구와 조각 기술 연구는 거의 없었다. 학자들은 전문 석공을 동원해 조각을 복제하고 단단한 바위와 부드러운 바위의 차이점을 꼼꼼히 기록했다.
랄프 아라크 곤잘레스 박사가 이끄는 고고학 팀은 조각을 하는데 어떤 도구가 사용되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남서부 유럽에 소재한 이베리아 반도의 석비를 조사했다. 이 돌들은 암석학적으로 분석되었다. 암석학은 단일 평면에서 진동하는 편광을 사용하는 암석 현미경을 사용하여 얇은 단면의 암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많은 석비들은 스페인 바다호수 지역의 길고 좁은 해발 고도 시에라 데 라 모랄랴에서 유래했다. 이 지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암석들은 단단한 석영-사암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포르투갈 알렌테호의 로차 두 비지오 유적지에서 발견된 철 끌을 분석하면서, 연구원들은 이 끌이 30%의 페라이트와 70%의 펄라이트로 만들어졌다고 확인했다. 세 개의 복제된 끌은 위조되었고, 한 개는 비교를 위해 부드러운 상태로 남겨졌다. 제조된 끌은 규산염 석영 사암으로 조각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연구원들은 청동 합금으로 만들어진 끌뿐만 아니라 철 끌을 이용하여 복제된 석재에서 실험했다. 청동 끌은 석영 사암의 표면을 관통할 수 없었지만 철제 ‘로차 두 비지오 끌’은 원래 조각과 거의 정확한 복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연구원들은 끌의 가장자리가 경화된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금속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었지만, 실험은 경화된 강철만이 성공적으로 석재를 조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라크 곤잘레스는 ‘로차 두 비지오의 끌‘과 강철의 생산과 담금질을 포함한 철의 야금학이 아마도 이베리아의 중앙집권화된 작은 공동체의 토착적인 발전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연구는 FBA-EIA 기간 동안 석재 조각과 철제 야금 사이의 확실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그 당시에만 이용할 수 있었던 모든 도구들을 고려해 볼 때, 연구원들은 이베리아 석재가 강철 끌을 사용해서만 조각되었을 수 있다고 결정했다.
로차 두 비지오에서 발견된 철제 끌은 FBA 기간, 즉 2,900년 전에 강철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EIA에서는 철강 생산이 불가능했고, FBA 기간 동안에는 확실히 사용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베리아의 마지막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은 강철을 담금질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석재를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의 연구결과는 철 야금학과 석영 조각에 대한 고고학적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김종대 글로벌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