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고(故) 이동찬 코오롱 선대회장은 지난 1992년 발간한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에서 재벌이 사라지기까지 대략 ‘30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54년 설립된 코오롱은 이원만 선대회장(창업회장)이 회사를 만들었지만, 국회의원과 공직 생활에 전념한 탓에 회사는 이동찬 선대회장이 도맡았다. 따라서 부자를 함께 창업회장으로 묶어도 무방하다. 이동찬 선대회장으로부터 그룹 전권을 물려받은 것은 아들 이웅열 명예회장으로 1995년의 일이었다. 그는 2019년 공식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웅열 회장(현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오너 4세인 이규호 전무(당시, 현재 코오롱모빌리티 대표이사 사장)가 있었지만, 그는 코오롱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회사를 이끌어가는 여러 전문경영인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앞으로 이규호 사장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2019년부터 코오롱그룹은 이동찬 선대회장의 예측대로 총수 개인이 아닌 ‘국민 기업’이 되었다.
코오롱의 사례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은 지난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당시)이 “경영권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뒤를 이어 몇몇 재벌 총수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국민 기업으로의 전환에 동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동찬 선대회장의 수많은 업적 가운데 단연 최고라고 추켜세운다.
이미지 확대보기1950년대 대한민국은 일제 수탈이 끝나자마자 6‧25전쟁까지 겪으며 인간의 기본생활 조건인 의식주가 마땅치 않은 시절이었다. 이에 이동찬 선대회장은 의식주 관련 제조업으로 기업을 경영하며 국가와 국민에게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원만 창업회장과 함께 의생활에 도움을 줄 직물 사업을 선택했다.
그는 “헐벗은 우리 국민, 옷 좀 잘 입고 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면서 택한 직물이 인조섬유인 나일론이었다. 코오롱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인 1955년만 해도 밀수입된 나일론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밀수란 예나 지금이나 국가 경제를 위해 근절해야 마땅한 것이지만 당시의 나일론 수요는 필요 불가결한 면이 있었다”면서 “그래서 여기에 착안했다. 다시 말해서 나일론의 국내 생산을 최초로 시도해본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한국나일론’으로 정했다. 현재 사명인 코오롱(KOLON)은 한국나일론의 영문명인 ‘KOREA Nylon’의 약어다.
코오롱의 나일론은 한겨울 동상과 동사에 시달리던, 헐벗은 우리 국민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었다. 섬유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로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이끌며 국민의 주린 배도 채워줬다.
이동찬 선대회장은 섬유 사업에서 성공한 뒤 1980년대에는 타이어코드, 필름, 메디컬 등 관련 분야로 영역을 확대해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1990년대에는 비섬유 사업 등을 비롯해 유통업으로도 외연을 넓혔다. 하지만 새 사업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뿌리는 섬유 사업에 있다. 그런 점에서 코오롱은 거의 한눈을 팔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왔다고 볼 수 있는 국내 재계에 몇 안 되는 ‘한 우물 기업’으로 성장했다.
나아가 “사업으로 나라에는 이익을, 후손에는 풍요로움을, 사원에겐 보람을 주고 싶다”고 말했던 이동찬 선대회장의 생전 바람처럼, 코오롱은 이제 국민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