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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재계] ‘新 따로 또 같이’ 주창한 최태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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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재계] ‘新 따로 또 같이’ 주창한 최태원 회장

‘SK 개혁의 가치’ 2013년 최태원 회장 주도로 도입
각 계열사가 경영 판단, 집단지성으로 그룹 이슈 결정
잊혀졌다가 최근 사업 구조개편 따라 다시 조명 받아
‘또 다른 오너’ 최창원 부회장, SK 변화 실무 담당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 개혁의 가치인 ‘따로 또 같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직접적으로 단어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 사업 구조 개편을 시작하면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생존 방법을 주문한 것이다. 각자도생이지만 결국 ‘SK’라는 하나의 울타리에서 번영하는 방법을 집단지성으로 모색하라는 취지다.
과거와 다른 점은 최태원 회장과 전문경영인 사이의 틈을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연결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6일 재계와 SK그룹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올해 1월1일 신년사를 통해 “모두가 ‘해현경장’ (解弦更張) 자세로 경영시스템을 점검하고 다듬어 나가자”며 “올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영 환경을 우리 스스로 성장에 맞는 내실을 갖추는 계기로 삼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해원경장은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매다’라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사회적·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최태원 회장의 발언은 기존 경영 기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비주력 사업과 자산을 빠르게 정리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Semiconductor),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 등 ASBB로 요약하는 미래 성장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큰 방향을 제시하되 최태원 회장은 방법론을 전문경영인들이 찾으라고 주문했다, “지주회사와 회장이 단독으로 그룹 경영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새로운 성장동력원을 만들어 가려면 그 분야에 가장 정통한 관계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그룹과 각 분야 전문가가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경영방식이 필요하다”는 ‘따로 또 같이’의 의도와 일치한다.

따로 또 같이는 최태원 회장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가 발발 중이었던 지난 1999년 총수에 오른 직후부터 수면으로 떠올랐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생존 조건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둔 ‘따로 또 같이 1.0’을 통해 SK그룹은 어떤 위기에도 그룹 도움 없이 홀로 경영이 가능한 흑자전환 구조로 변신했다.
2007년에는 ‘따로 또 같이 2.0’ 체제를 시작했다. 오랜 내수기업의 이미지를 털어내는 데 초점을 두었고, 국내 전체 수출의 10% 안팎을 책임지는 수출형 기업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주회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사업을 추진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최태원 회장과 지주사가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2013년부터 시작한 것이 ‘따로 또 같이 3.0’으로, 각 관계사에 자율 경영과 의사 결정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그룹 의사 결정과 사업구조를 바꿨다.

이후 10년 넘게 자취를 감췄던 ‘따로 또 같이’가 재조명받는 것은 SK그룹 의사 결정 구조가 정체되면서 새로운 개선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수펙스 추진위원회가 설치되어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모두 참여하는 집단지성을 활용한 경영체제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10년 가까이 같은 방식이 이어지면서 안주하려는 의식이 드러나고 있어 이를 개선하고 혁신의식을 재무장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이를 통해 1990년대 이후 가장 어려운 위기를 겪고 있는 SK의 생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최태원 회장의 충격 처방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신(新) 따로 또 같이’는 기존과 차이를 보이는데, 바로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부회장)이 주인공이다. 최태원 회장과 전문경영인의 직접 적인 관계 사이에 최창원 부회장이 포함되어 양측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한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SK그룹 기업문화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오너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인인 계열사 대표가 단독 의사 결정을 하기는 어려워하는 게 사실이다”면서 “경마장 트랙을 직진만 하는 경주마처럼 계열사 경영에만 집중해 온 전문경영인 CEO가 그룹 전체를 보고 중차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도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전문경영인들의 애로를 경감시켜, 최태원 회장에게 더 솔직한 의견을 전달하고, 반대로 최태원 회장의 생각을 전문경영인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해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최창원 의장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창원 의장은 선임 후 열리는 CEO 회의나 주말 사장단 회의 등을 모두 주재하고 있고, 최태원 회장은 한 발 떨어져서 그룹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 전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업 구조 개편을 스피드하게 전개한다는 차원에서 전문경영인 CEO들이 소신을 적극 발휘할 수 있도록 오너 경영인들이 결정의 폭을 넓힌 것”이라면서, “SK 오너 일사의 책임 경영의 일환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