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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유럽산 부품 의무화’에 자동차업계 반발…“공급망 혼란·혁신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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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유럽산 부품 의무화’에 자동차업계 반발…“공급망 혼란·혁신 역행”

독일 뮌헨에 위치한 BMW 본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독일 뮌헨에 위치한 BMW 본사. 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이 주요 산업 제품에 유럽산 부품 사용을 의무화하는 ‘유럽산’ 규제를 추진하자 자동차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공급망을 복잡하게 만들고 전기차 전환을 늦출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EU의 관련 규정이 자동차, 태양광 산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며 11일(이하 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했다.

◇ 올라프 치프제 “EU, 혁신 경쟁서 배제될 수도”


FT에 따르면 BMW의 올라프 치프제 최고경영자(CEO)는 “유럽산 부품 의무화는 계산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매우 위험한 규제”라며 “유럽이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같은 규제가 전기차, 태양광 부문 등에서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
EU는 당초 태양광 인버터, 자동차 등에 대해 부품의 최대 70%를 유럽산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업계의 반발로 이 비율은 다소 낮춰질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규정은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안의 일부로 오는 1월 28일 발표를 목표로 집행위원회 내에서 최종 조율 중이다.

◇ 일본·영국·터키 배제 우려…글로벌 반발 확산


혼다 유럽법인의 오쿠다 가쓰히사 사장은 EU 집행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지나치게 폐쇄적인 조달 기준은 유럽의 친환경 모빌리티 전환을 오히려 늦출 수 있다”며 “자유무역, 시장경제, 공통된 정치·경제 가치에 기반한 ‘가치 공유 조달’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자동차업계를 비롯해 EU 내 일부 제조사들은 자사 생산거점이 있는 영국과 터키도 유럽산 인정 기준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 부품업계는 찬성…“생존 위한 보호 장치”


다만 완성차 업체와 달리 유럽 부품업계는 조달 의무화가 생존을 위한 필수 조치라고 강조한다. 유럽자동차부품협회(CLEPA)의 벤야민 크리거 사무총장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는 상황에서 EU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조달 기준은 일자리를 보호하고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에너지 기업인 노르웨이 넬하이드로젠의 콘스탄틴 레보야니스 공공정책 총괄은 “과거 유럽 청정기술 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와 덤핑으로 붕괴됐다”며 “이번 조치는 부품 수준에서 유럽산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밝혔다.

◇ “투자 불확실성 해소하되 인센티브 병행 필요”


리차지유럽의 일카 폰 달비크 사무총장은 “최근 EU 내 배터리 프로젝트가 잇따라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며 “유럽산 조달 기준은 기업에 투자 확신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세제 혜택과 보조금 등 산업 전략 전반과 연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솔라파워유럽의 발부르가 헤메츠베르거 CEO는 “공공 조달 과정에서도 유럽산 비율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유럽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분야까지 지역 조달을 강요할 경우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EU는 자국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IRA 대응책이지만 목표 미달…성과는 아직


EU는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3700억 달러(약 543조1600억 원) 규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해 자국 산업 보호 방안을 추진해왔다. 특히 태양광, 풍력, 히트펌프 분야의 자국 제조 확대 목표를 내세웠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유럽산 조달 의무화 규정은 오는 1월 말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할 예정이며 그 전까지 업계 의견을 반영한 최종 조율이 계속될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