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 장기화 속 산업현장 '시장 중심'으로 이동
반도체·배터리·자동차 공급망 다변화 본격화
아세안·인도·유럽으로 투자축 이동하며 실리 외교 강화
반도체·배터리·자동차 공급망 다변화 본격화
아세안·인도·유럽으로 투자축 이동하며 실리 외교 강화
이미지 확대보기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막을 앞두고 '경제 회복과 공급망 안정'이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산업계도 기술 동맹보다 현실적 공급망 해법에 초점을 맞추며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행보를 가속하고 있다.
올해 APEC 의장국을 맡은 한국은 '지속 가능한 내일을 함께 만든다(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를 주제로 △연결 △혁신 △번영을 3대 의제로 제시했다. 주요 논의는 산업별 공급망 회복력 강화와 무역·투자 협력 복원에 맞춰져 있다. 산업계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안보보다 산업, 이념보다 시장 중심의 협력 구조가 재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은 미·중 경쟁 심화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중심의 단일 구조에서 벗어나 아세안, 인도, 유럽 등으로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과 중국을 넘어 인도네시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지에서 완성차 및 부품 생산망을 재편하고 있으며, 배터리와 전장 부품에 대한 현지 공급망 다변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정부 역시 이번 APEC을 산업 협력 회복의 전환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급망 대응과 첨단산업 협력을 위한 실무 논의 채널을 각국과 개설하고 있으며, △광물 △소재 △물류 분야를 중심으로 민관 공동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장비·소재 분야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동남아 및 인도와의 기술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이 중점 과제로 거론된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도 크다. 반도체와 배터리는 소재·장비·설비 생태계가 밀착돼 있어 대체공급망 구축이 쉽지 않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관세, 원산지 규정 등 무역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업계는 이로 공급망 전환 속도가 느려지고, 투자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물류망 재편, 인증표준 대응 등도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APEC 회의에서는 한국의 중간재·첨단부품 수출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다자 협력 방안이 중점 논의될 전망이다. 산업계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의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공급망 안정, 디지털 무역규범, 핵심광물 확보 등이 새로운 협력의 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PEC은 선언적 외교무대가 아니라 산업 협력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이념보다 시장 중심의 협력 질서가 복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산업계는 기술동맹보다 공급망 중심의 현실 전략을 앞세워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생산과 조달, 물류가 얽힌 세계 시장의 구조적 변동 속에서 누가 먼저 실질적 대응에 나서느냐가 향후 5년의 경쟁력을 결정할 전망이다.
김태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host427@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