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20년 전인 1895년 8월 20일, 양력으로 10월8일의 일이었다. 그날 새벽 명성황후가 건청궁 옥호루 침실까지 난입한 낭인들의 칼에 난자당했다. 옷이 벗겨지고 시신은 능욕 당한 채 불에 태워졌다. 주범은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였다. 명성황후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 민자영(본명)의 비극만이 아니다. 일국의 국모이자 당시 사실상 최고 권력자였던 그녀의 피살은 곧 조선의 죽음이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1895년 을미년 명성황후 시해사건도 예외일 수 없다. 을미년을 여는 새해 아침 을미사변을 되새겨보는 이유이다.
조선이 일본에 밀린 결정적 계기는 19세기 말 서세동점이었다. 서양이 교역을 요구하며 몰려왔을 때 조선은 쇄국으로 맞섰다. 오로지 중국만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 빠져 더 큰 세상을 보지 못했다. 이양선 몇 척 물리친 사실에 도취되어 척화비를 세우며 자만했던 것. 반면 일본은 1858년 미일수호조약으로 문을 열었다. 서양세력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힘을 키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조선이 척사양이(斥邪攘夷)라면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였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갈파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는 뜻이다. 고전파 경제학자 리카도는 그 유명한 ‘비교우위론’에서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상호교역에서 찾았다, “모든 나라는 예외없이 특유의 우위를 갖게 마련이고 이를 서로 나눌 때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오늘날까지 무역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입증하는 기본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한말 조선은 이 평범한 글로벌의 진리를 간과했다. 당시 우리에게 접근해온 서양은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최첨단의 문명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들과의 교류기회를 놓친 것은 실로 큰 패착이었다.
해방 70년을 맞는 오늘 이 순간에도 글로벌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의 확대 등으로 세상이 더욱 좁아졌다. 지구촌을 하나의 무대로 삼지 않고서는 생존조차 어려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국경 없는 세계에서 국적 없는 세계로의 글로벌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우리 경제의 돌파구도 결국은 그 실마리를 해외에서 풀 수밖에 없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도 국제정세와 나라간 역학구도와 직결되어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유가증권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35.5%가 외국인 소유지분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보유 지분은 아예 절반을 넘어 52.0%에 달한다. 우리 자본의 해외진출 규모도 이에 못지않다. 글로벌 시장이 바로 한국이고 한국시장이 또한 글로벌인 것이다.
본사가 제호를‘글로벌 이코노믹’으로 바꾼 것은 우리 사회가 글로벌 환경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나름의 역할을 해보고자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전 세계 각국의 살아있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정리하여 널리 알림으로써 글로벌의 기초자료로 활용토록 하자는 것이었다. 지구촌 곳곳에 특파원과 통신원을 두어 현장의 움직임을 바로 전달하고자 한다. 현지 언론과의 연대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를 통한 심층진단과 전망 등도 강화해가고 있다. 단순한 외신의 수집 차원을 넘어 한국적 시각에서 지구촌 뉴스를 재해석 재평가하는 글로벌 언론의 새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이것이 을미사변이 주는 교훈이자 시대가 요구하는 역사적 사명이라고 믿는다.
2015년 乙未 元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