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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우유 한 컵, 라면 한 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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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우유 한 컵, 라면 한 봉지

윤성식 연세대 교수
윤성식 연세대 교수
지난 여름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던 대학의 교정이 요즘 분주하게 오가는 청춘들로 채워지고 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청춘은 아름다워라’(Schon ist die Jugend)라고 미화했지만 청춘이 늘 아름다운 건 아닌 것 같다. 상아탑을 졸업해도 직장 구하기 어려워 소위 3포 세대나 5포 세대를 살아가는 요새 젊은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다.

한 사회의 소득분배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경제학에서는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를 사용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그것은 0.4 정도이니 이미 중산층이 파괴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중산층이 붕괴되면 서민 가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생필품의 소비다.
우리나라는 기획재정부에서 정한 52개 품목이 생필품으로 올라있다. 쌀, 라면 배추, 달걀, 휘발유, 우유, 콩나물, 소주, 교통비 등이다. 이 중에서도 학생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가장 많이 먹는 식품을 꼽으라면 바로 인스턴트 라면일 게다. 라면은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라는 일본 사람이 개발한 ‘치킨라멘’이 시장에 나온 후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식품의 하나가 되었다. 시판 라면 한 봉지 가격을 물으니 800원이란다.

라면과 함께 우유는 생필품으로 지정될 정도로 청소년의 성장과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1960-1970년대만 해도 우유는 귀족 식품의 대명사였다. 특별한 날 제과점에서 빵과 같이 먹었던 흰 우유는 필자의 사춘기 시절을 상기시키는 추억의 한 장면이다. 그러던 우유가 이제는 어른은 물론 우리 청소년에게도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이 땅에 낙농산업이 본격적으로 출범한 후 불과 50년 만에 매장의 구석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낙농산업에 종사할 인재들을 양성해왔던 학과(學科)마저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니 이 산업의 장래가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도대체 우유의 인기 추락 원인은 무엇일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제품의 주 소비층이라 할 수 있는 아동 인구의 현저한 감소, 채식주의자 및 동물보호 단체들이 펼치는 집요한 안티우유 선동, 커피 위주의 음료 문화 등이 거론되지만 세간에는 비싼 우유가격이 소비를 막는 가장 큰 장해물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200㎖ 시유제품 가격을 보니 대략 700원이다. 가격으로 보면 라면 한 봉지와 우유 한 컵이 비슷한 셈이다.

그러나 두 식품의 선호도 측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우유는 영양소가 많지만 기호성과 포만감이 낮다. 반면 라면은 기호성과 편리성뿐만 아니라 끼니를 때울 수 있으니 식욕이 왕성한 청소년들은 당연히 라면을 선택할 게다. 보고된 바와 같이 국산 시유 한 컵은 일본 우유보다도 20% 정도 비싸다. 게다가 우유가 남아도는 현실에서 우유 값이 내려가지 않고 고공 행진하는 현상을 대중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소비자들에게 농산품 구입 시 우선순위를 물으니 가격(price)-품질(quality)-안전(safety) 순으로 응답했다. 소비자 대중은 품질보다 가격을 먼저 고려하여 농산물을 구입하니 비싼 우유가 좋다고 아무리 호소해봐야 그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몇 해 전 발표된 (사)한국낙농육우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낙농가 중 우유를 생산하는 비용 중 사료비가 차지하는 비율, 이른바 유사비(ratio of milk production of feed)가 80% 이상인 농가가 21.2%에 이르고, 사료가격의 인상 때문에 농가 경영이 ‘매우 어렵다’고 응답한 낙농가가 48.3%나 됐다. 유사비는 2011년 65.1%, 2012년 68.2%, 2013년 71.3%로 해를 거듭하면서 증가하는 추세다. 따라서 국산 우유 값의 인상 요인이 목장의 높은 유사비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통계를 보니 현재 우리나라는 옥수수 곡물자급률이 고작 1% 내외로 매년 600만t 이상의 옥수수를 사료용으로 수입하고 있다. 한마디로 해외로부터 수입의존도가 너무 크다. 이처럼 열악한 여건에서 국내 낙농업을 수입산 곡물이나 조사료에 의존하는 경영과 수입환경이 바뀔 때마다 정부가 내놓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더 이상 이 산업을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지구촌에서 원유생산비가 가장 비싸고 그 때문에 국민들이 가장 비싼 시유를 사 먹어야 한다고 전제할 때 우리는 ‘낮은 사료자급률’ 문제를 풀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국내 농어업 생산액 중 약 40%를 점유하는 축산업(16조2000억, 2013)의 운명이 값싼 양질 사료 공급과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누가 이 난제를 풀어야 하나. “사료의 수급안정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사료의 생산·수출·수입 및 공급 등에 관한 수급계획을 수립·시행할 수 있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료 수급의 일차적 책임은 바로 정부에 있다. 그나마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사료용 옥수수 생산을 늘리고 곡물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 현상이라 하겠다.

한반도는 국토 면적의 약 65%가 산지이다. 농경이 불가능한 임지가 대부분이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토지의 이용에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우리나라 임지 중 85만ha가 초지 조성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읽어보니 더욱 그렇다. 솔직히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국민 여가생활을 위한 골프장은 넘쳐나는데 변변한 대규모 목초 단지는 찾기 어려우니 정부의 축산업에 대한 비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스라엘은 국토가 매우 작아 경작지가 별로 없다. 물이 부족하여 가축 사육환경이 매우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첨단기술을 농업과 접목시켜 낙농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토지, 기후조건을 극복하고자 과학 축산과 사양기술을 국가 차원에서 발전시켜 왔다. 농업을 육성하는 정부의 의지는 이처럼 중요하다. 그간 민간 또는 정부 차원에서 해외 사료자원 개발이 추진된 바 있으나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해외보다 국내 자원을 먼저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필자가 주장한다면 무지의 소치일까.

요즘 유제품 소비가 부진하고 잉여우유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됨에 따라서 국내 여러 낙농단체에서는 우유의 영양학적 효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중이다. 그러나 대중은 "가격이 너무 오른 상황에서 소비를 장려하는 활동은 설득력이 약하다"며 시큰둥하다. 우유의 건강효능을 알리기보다는 우유의 소비자 가격을 낮추는 것이 먼저라고 꼬집는다.

지난 8월 뉴질랜드 최대 낙농회사 폰테라는 2015-2016 시즌 농가 수취 예상 우유가격을 우유 고형분 기준 ㎏당 3.85달러로 무려 1.40달러를 하향조정했다. 목장에서 수취하는 우유가격을 내릴 수 있어야 덩달아서 유제품 가격도 인하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유대가 연동제 공식으로 결정되는 현행제도하에서 낙농가는 원유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낙농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 낙농가 단체의 결연한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가공 업계도 제조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가격인상을 막아야 한다. 비록 농업 인구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국내 농업이 미래 우리나라의 희망이라는 정부의 인식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축산업을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겠으나 근본적으로 축산기반을 확충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불모의 사막을 낙농 강국으로 바꾼 이스라엘처럼 말이다. 제발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자.
윤성식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