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취임 이후 줄기차게 월병 퇴치 운동을 벌여왔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 하자면 월병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기 보다는 월병으로 상징되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는 것이다.
수년 전 중국에 50만 위안짜리 월병이 등장해 화재를 뿌린 적이 있다.
월병을 사면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를 끼워주는 판매전략이었다.
월병 그 자체만으로도 수십 만원을 홋가하는 고급 월병도 생겨났다.
이같은 고가의 월병은 주로 뇌물로 사용된다.
월병을 이용한 뇌물 수수가 극성을 부리면서 월병부패란 말이 생겨났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이후 월병부패 또는 월병경제 척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취임이후 중국의 월병 판매가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월병을 통채로 없엔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에게 월병은 각별하다.
정부가 퇴치운동에 나섰다고 바로 없어질 그런 일회성 상품은 아니다.
월병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고 얽힌 이야기도 많다.
그 중 하나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이야기다.
원나라 말 민심이 어지러워지면서 곳곳에 봉기가 일어났다.
주원장도 그 때 일어섰다.
원나라 정권을 타도할 거사일을 달 밝은 음력 8월 15일로 정했다.
문제는 연락 방법이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때 주원장의 한 참모가 꽤를 냈다.
추석 선물을 빙자하여 월병을 선물을 돌리면서 그 월병 속에 쪽지를 넣어 거사일과 장소를 통보하는 것이었다.
작전은 성공했다.
월병속의 통지사발문을 본 농민들이 대거 참석하여 주원장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나라가 명나라다.
명(明) 나라를 세우고 초대 황제에 오른 주원장은 매년 음력 8월 15일 되면 월병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뿌렸다.
온 국민들이 다 함께 월병을 먹으면서 봉기를 기념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부터 월병은 중추절을 대표하는 명절 음식이 됐다.
중국인들이 추석 선물로 월병을 주고받는 풍습도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명나라의 시조였던 주원장은 월병을 먹으라고 독려했는데 지금의 시진핑은 월병퇴치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같은 월병을 두고도 시대에 따라 또는 권력자에 따라 입장이 1백80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역사와 시간의 아이러니다.
[계속]
김대호 경제연구소 소장 겸 대기자 tiger82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