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천천히 오래 내려야 봄비다. 소나기처럼 후다닥 왔다가는 비로는 오랫동안 추위에 웅크린 채 메말라 있던 뿌리를 해갈시키지 못한다. 목말라 있기는 흙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땅 속으로 파고든 비는 빈틈을 따라 가장 아래로 내려간다. 강하게 빨리 쏟아지는 비는 딱딱한 땅의 피부에 튕겨 땅 위의 낮은 곳을 찾아 곧장 흘러가 버리고 만다. 그런 비로는 봄빛이 피어나지 않는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꾸준히 표피를 두드리며 풀어진 흙 속으로 스며드는 비야말로 풀과 나무의 뿌리까지 차오른다. 봄비가 다녀간 다음에야 풀과 나무에 생기가 돋고, 봄꽃이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다. 한식에 봄비는 제대로 내렸다.
이제는 아무도 일부러 찬밥을 먹지 않고, 아무도 나무 심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날에 비는 묵묵히 제 일을 했다. 비가 콘크리트 벽을 적시고 유리창을 때리며 분부한 저녁, 차와 사람들이 퇴근길로 쏟아져 나왔을 때 누군가는 불 켜진 사무실에 남아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으며, 누군가는 대형서점 안을 돌아다니며 잘 보이게 펼쳐진 책들을 뒤적거렸다. 누군가는 이른 술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었고, 누군가는 분식집에서 혼자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지 않는 손님들을 기다리며 창밖으로 무표정한 시선을 던졌고, 누군가는 그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빗속으로 사라졌다. 봄비가 쉼 없이 지상으로 내리는 동안, 비가 닿는 곳이나 닿을 수 없는 곳에서나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사위가 어둠에 갇히고 봄비 소리가 적막을 더할 때면 이은하의 ‘봄비’가 절로 떠오른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흥얼거렸던 바로 그 노래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로 시작해서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로 끝나는 추억의 노래. 최근 TV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아버지의 빚 보증으로 인한 파산 이후 희귀 질환으로 투병하고 있는 이은하를 등장시켜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기도 했다.
가슴 속으로 밤새 봄비가 내렸다. 봄은 훌쩍 푸르러질 것이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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