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섭씨 36도에 달하는 무더위에 그늘로 숨어든 바람마저 기진맥진한 8월 상하이의 오전, 훙커우에서 이름을 바꾼 루쉰 공원의 한쪽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윤봉길 의사 생애 사적 전시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1층의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면의 윤봉길 의사 흉상 옆으로 세로로 쓰인 ‘丈夫出家生不還(장부출가생불환)’이 눈에 들어왔다. 적막한 공간에 홀로 서서 깊이 고개 숙였다. 가벼운 삶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전시관을 물러나와 발길을 돌리기 전 다시 한 번 두 손을 모았다. 그의 짧은 생의 무게가 가슴을 눌렀다. 사람은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남는다는 교훈이 햇살처럼 선명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굳게 남겼다. 17년 만에 찾은 상하이는 무덥고 습했다. 거리를 거니는 동안 땀이 속절없이 쏟아졌다. 젊은 시절 출장을 다니던 가을과 겨울의 상하이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더위였다.
때로 더위를 식히는 비가 굵게 떨어졌지만 비가 그친 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더위는 더욱 맹렬해졌다. 흙을 밟기 어려운 상하이의 도심에서 날마다 멀어졌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내내 날씨는 거리를 데웠고 달궈진 거리 위에 사람은 넘쳤다. 임시정부청사 안의 오래된 계단에서는 더위 아래와 사람들 속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처연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낡은 신발들이 시간을 넘어와 나의 걸음 옆으로 함께 오르내리며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하이 사람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모여든 예원에서 오래도록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신천지와 타이캉루, 헝산루 등을 거닐며 매일 자유의 크기를 늘려가는 젊은 중국인들의 에너지를 느꼈다. 와이탄과 빈장다다오의 야경을 감상하며 더해진 화려함 안에 감춰진 중국의 야망을 생각했다. 칠보노가와 주가각 골목을 흘러 다니며 식탁 위에 넉넉한 반찬을 올려주는 한국의 밥집을 그리워했다.
인민광장을 가로질러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무방비로 젖을 때는 중국 당국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해졌다. 자국의 사람들이 몇 십 분간 밖에서 비를 맞거나 말거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박물관 1층 검색대 안쪽의 안전이었다. 박물관 출입구의 검색대는 모든 지하철역에도 공항의 게이트에도 인터넷에도 근엄한 표정들과 함께 놓여 있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자국민의 안전이 아니라 체제의 안위처럼 보였다.
그 검색대들이 우리 사회에도 얼마 전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밝은 세상에서 속속 드러났다. 자유를 맛본 사람들은 자유를 끊기 어렵다. 자유의 중독성이다. 우리 사회에서 검색대를 몰아낸 힘은 자유를 맛보았던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에 있다.
칼 세이건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으로 표현했다. 암흑의 공간을 달려가는 탐사선이 고개 돌려 보내온 사진 한 장에서 지구는 그 외의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창백한 점 위에 다시 수많은 선들이 그어져 있다. 선과 선이 면을 만들어 그 안의 사람들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짧은 한 생을 살다가는 사람의 삶의 목표는 그 면의 시대적 환경에 좌우된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뉴욕증시] 국제유가 반등에도 3대 지수 상승](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setimgmake.php?w=270&h=173&m=1&simg=2026031801224308856be84d87674118221120199.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