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서리에 국화꽃마저 지고 나면 꽃송이를 닮은 함박눈이 이따금 찾아와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눈이 쉬는 날이면 훌쩍 넓어진 공간으로 바람이 혹독한 겨울을 거침없이 풀어놓을 것이다. 물질로 화려하게 세상을 장식했던 자연은 다시 그 물질을 거두어 죽이고 있다. 죽어야 사는 이치를 가르치는 계절의 앞에 또다시 선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신어(新語)사전 편찬을 담당하는 사임은 윈스턴에게 말한다.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思想罪)'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왜냐하면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될 거야. 한 해 한 해 어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식의 한계도 좁아지겠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오래된 철학적 명제는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의 철학으로 실천된다. 사전에서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등의 어휘를 제거하면 그 어휘들이 조장했던 의식이 차츰 소멸하여 결국 부자유와 불평등을 강요하는 독재정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뿌리마저 거세될 거라는 식이다. 병상에서 지병과 싸우며 우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렸던 작가의 상상력은 21세기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부에 의해 현실로 생생하게 구현되었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국가기관들을 활용해 저지른 일련의 일들은 언어의 지배를 통해 사고를 통제하려는 소설 속 오세아니아의 정책과 정확히 일치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포털과 커뮤니티 사이트들에 둥지를 틀고 그들의 하수인들이 벌인 ‘댓글’ 공작은 소설 속 사전 편찬과 다르지 않다. 그들 치하의 TV라는 매체는 소설 속 텔레스크린이었다. 그들의 의도가 조지 오웰이 상상했던 추상적 시점의 미래를 현재의 한국 사회에 구현하는 것이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고가 언어를 지배한다’는 또 다른 철학적 명제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독재자들이 오랫동안 허울 좋은 언어 아래에서 저질렀던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 세뇌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확장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했다.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자들의 사고체계가 가진 근원적 한계다.
가을나무에 매달려 있는 저 나뭇잎들처럼 가야할 자들은 가야한다. 부당하게 권력을 누리고 소유를 독차지했던 자들은 낙엽처럼 떨어져 철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적폐는 사람이 쌓는 것이다. 청산의 대상은 폐단이 아니라 폐단을 쌓은 사람들이다.
서리가 내렸으니 촛불처럼 노랗게 국화꽃이 필 것이다. 꽃말은 아깝지만 적폐들에게는 하얀 국화꽃을 건네고 싶다. 백국(白菊)의 꽃말은 ‘성실, 감사, 진실’이다. 그런 면에서, 다스는 누구겁니까?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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