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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개인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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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개인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양지원 파지트 에디터
양지원 파지트 에디터
세대론이 들썩이고, 여러 개인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개인 유튜버가 콘텐츠를 만들고, SNS로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것은 더 이상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새로움의 부상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조직이나 집단이 아닌 개인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세대론의 논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첫 시작에 X세대가 있다. X세대의 경우, 제일기획 트렌드 리포터에서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였으며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던 세대로 경제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던 세대"로 정의한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청년기에 IMF를 경험한 세대를 주로 일컫는다.
바로 뒤에 오는 세대로는 밀레니얼 혹은 Y세대로 대변되는 집단이다. 교육수준이 높고, 테크놀로지와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세대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환경을 둘 다 경험한 사람들을 통칭한다. 그 다음은 1990년대 중반에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써 Z세대인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랐다는 의미로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이 세 세대를 설명하면서 빠지지 않는 단어들이 있는데 그건 '개성적', '개인적'이라는 표현이다. 이 말이 그들에게 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사적 연대의 경험이 이전 세대보다 확연히 적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말 전후 사회의 혼란을 수습하고, 19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고, 1980년 민주화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연대했고, 서로 같은 목표를 가진 채 직면한 장애를 넘어왔다. 그 가운데 "난 너와 달라"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등장은 새로운 혼란이었다. 그 혼란에 처음 이름 붙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X세대'라는 칭호였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잘 맞는 개성적인 개인이 문제가 되는 것은 포용력에 있다. 연대의 경험과 기억은 구성원끼리의 동질감과 응집력을 만들어낸다. 끈끈함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다름'은 유별난 것이 아닌 인간적 차원의 자연스러움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공통의 경험이 없고, 유대가 부족한 관계에서 다름은 이해의 영역이 아닌 판단의 영역이다. 정치적 이슈뿐만 아니라, 성별, 세대, 즉, 집단 간의 차이가 있는 곳에서 빈번하게 오고가는 것은 '그 행동, 사상, 생각들이 옳은가?'이다. 그런 논의들은 도덕성을 지켜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포용의 탄력성을 잃게 하기도 한다.

뭉쳐지지 않고 흩어져버리는 구성원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정부, 기업적 차원뿐만 아니라 조직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세대론 뿐만 아니라, MBTI 성격 유형 검사,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개인의 기질과 성격, 각각의 가정환경으로 개개인을 조망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들을 이끌어 가는 조직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까? 현재 조직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끌어안을 수 있는 넉넉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대의 순간을 늘려가야 한다. 연대의 뜻은 새롭게 재해석돼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연대 방식, 예로 들자면, 회식이나 관례적으로 지속돼 온 사내 행사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진정한 함께함이 필요하다.

철학자 한병철은 현 시대를 "리추얼(Ritual, 공동체가 보유한 가치들과 질서들을 반영하고 전승하는 상징적 행위)이 사라진 사회"라고 표현했다. 조직이 오늘의 개인들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유물을 그대로 전승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들을 위한 새로운 문법의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던 리추얼이 될 것이고, 곧 연대의 순간이 될 것이다. 앞으로 있을 조직의 모습은 조직의 언어로 개인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의 언어가 공존하는 형태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 다양한 언어를 포용하고, 보유한 조직일수록, 새로운 혁신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양지원 파지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