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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어느 날, 의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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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어느 날, 의욕이 사라졌다

김다혜 플랜비디자인 책임컨설턴트
김다혜 플랜비디자인 책임컨설턴트
어느 날, 의욕이 사라졌다. 대한민국 출산율보다 더 낮은 게 있을까 싶었는데, 그보다 낮은 게 내 의욕이었다. 남들은 마음속에 헬렌 켈러의 설리번 같은 선생님이 있어 힘들 때면 위로를 해준다던데. 내 속에는 늘 영화 <위플래시>의 플래처 선생님만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되겠어? 빨리 다시 일어나! 더 세게, 더 강하게, 더 높게, 지금 당장!" 다그치는 말이 배꼽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렇게 번아웃이 왔는데도 나는 계속해서 일을 '잘' 했다.

그게 현대 번아웃의 가장 나쁜 문제점이다. 생산할 능력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생산성을 유지한다. 심지어 높은 생산성을 가진 사람도 있다. 마치 알코올에 중독됐으나 삶을 잘 유지하는 듯 보이는 '고기능 알코올중독자'처럼 말이다. 자신을 몰아붙인다. 힘들지만 결과물이 나왔으니 '나는 괜찮다'고 되뇐다. 번아웃이 상장 같기도 하다. 힙한 '허슬러(Hustler)'인 것 같다. 미디어에 나오는 직장인처럼 시크하려면 모름지기 야근과 카페인 중독 그리고 번아웃에 조금 시달려야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우울증과 번아웃을 잘 구분하지 않으려는 것도 문제다. 물론 번아웃이 심해지면 의사의 상담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기력하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모두 우울증으로 퉁쳐버린 뒤, 환경과 행동을 바꾸지 않은 채 약물만 복용하는 건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번아웃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척도는 마슬라흐 번아웃 인덱스(MBI)다. 마슬라흐는 개인적 성취 감소, 탈진, 비인간화로 번아웃을 측정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비인간화'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사물이나 대상으로 대했다. 자신의 일에 대한 감정이 밋밋해지고, 시니컬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 내 개인이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우선, 안전한 베이스캠프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 사회생활용 가면을 벗고 이야기할 상대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번아웃을 증폭시키는 가짜 베이스캠프가 있다. 부정적인 정서를 극대화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듯하나 조직에 대한 불만을 과장해 여론을 만든다든지, 결국 험담으로 귀결되도록 대화를 인도하는 사람, 결론적으로 같이 있으면 마이너스의 정서를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 또한 번아웃을 만들어낸 조직문화에 n분의 1 책임이 있으며, 앞으로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음으로는 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번아웃이 왔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함이라며 일을 더 받아 파묻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간곡히, 그러지 말기를 바란다. 업무를 조금 줄여보는 건 정말, 정말로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거절감은 힘든 감정이다. 하지만 머니투데이의 체헐리즘 기사, ''거절당하기' 50번… 두려움을 깼다[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참고해 보면 계속해서 거절당할수록 거절의 긴장도가 낮아지며, 부탁이 편해진다. 그리고 무엇을 더 시도해볼까, 두근두근하는 마음까지 생긴다고 서술했다. 그러니 위기 상황일수록 업무를 더 맡아 자신의 생산성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을 먼저 거절해 보자.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를 쓴 저자 안주연은 번아웃의 '자격'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돌아보면 번아웃으로 인한 일시적 인지능력 저하를 겪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자신의 나이를 탓했다. '내가 나이 드니 예전 같지가 않다'고 하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며 해봤을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존중하자.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하릴없이 졸고만 있는 고양이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무용한 나를 존중하자. 내가 있으니 일도 있는 것이고, 내가 존엄하니 내가 하는 일도 존엄해진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