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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단풍본색(丹楓本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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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단풍본색(丹楓本色)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을 읊조리며 창밖 풍경을 우두망찰 바라본다. 초등학교 운동장 가에 여름내 초록 그늘을 드리우던 대왕참나무가 불붙듯 타오르고, 담장 옆의 벚나무와 느티나무도 시나브로 물든 이파리를 내려놓고 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인의 통찰력이 새삼 놀랍다.

사람과 달리 나무들은 허투루 힘을 쓰는 법이 없다. 나무가 때를 알아차리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고 단풍 들고 잎을 떨구는 것도, 그들에겐 지극한 삶의 순간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나무들은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도 않을뿐더러 절대 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를 알아차리는 일은 나무뿐만 아니라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에게 중요하다. 밥 먹을 때와 잠잘 때,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올바른 사람을 살아내기 힘들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은 것이란 말도 있지만, 살다 보면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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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번지고 단풍은 물든다. 얼마 전까지도 초록 일색이던 숲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오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산정으로부터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는 산을 바라보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옛사람들처럼 만산홍엽(滿山紅葉)이란 말로 뭉뚱그려 가을 산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사철 푸른 침엽수를 제외하면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제각기 저만의 색으로 물들어 대자연의 만다라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꽃들이 사람을 위해 피어나지 않는 것처럼 나무들이 단풍 드는 것은 우리에게 눈 호강을 시켜주기 위한 게 아니다. 곧 들이닥칠 혹한의 겨울을 나기 위한 채비를 하는 것이다. 가을 산의 화려한 변신 뒤엔 생존의 비법이 숨겨져 있다.

낙엽을 만들기 위해 나무는 줄기와 가지 사이에 단단한 세포층인 ‘떨켜’를 만든다. 벼처럼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는 이 떨켜에 막혀 뿌리로부터 수분이나 영양분을 더는 공급받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역으로 광합성을 통해 만든 당이나 녹말 등도 뿌리로 보낼 수 없다. 이로 인해 잎에 쌓인 영양분으로 산성도가 증가하고 물이 부족해져 나뭇잎에서 광합성을 하던 엽록소 또한 분해 파괴된다. 상대적으로 분해 속도가 느린 색소가 초록 가면을 벗고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미당(未堂) 선생이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고 노래했던 바로 그 단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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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시아닌은 붉은색, 카르티노이드는 노란색, 타닌은 갈색, 크산토필은 주홍색을 띠게 된다. 단풍나무·화살나무·신나무 등은 붉게, 은행나무·생강나무·아까시나무는 노랗게, 고로쇠나무·상수리나무·느티나무가 갈색으로 물드는데, 이는 초록 잎 속에 고이 숨겨두었던 제 안의 본색이 가을을 맞아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시인들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지만 놀랍게도 정작 이런 비밀을 밝혀낸 것은 과학자들이다. 그 현란한 색의 향연 앞에 연신 탄성을 자아내다가도 그 화려함이 나무들의 본색이란 생각을 하면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하지만 단풍의 시간은 매우 짧다. 꽃보다 곱던 잎들도 바람 한 번 지날 때마다 우수수 낙엽이 되어 흩어지면 나무들은 화려한 꽃과 무성한 잎으로 가렸던 자신의 부끄럽지 않은 몸을 드러내 보인다. 나무들 삶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의 계절, 화려하게 물든 가을 숲에서 나무들의 곡진한 삶을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 한편이 애잔하고 서늘해진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