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먼다오는 중국 본토 후젠성 샤먼시에서 10㎞ 떨어져 있다.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지척(咫尺)이다. 홍콩발 샤먼행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진먼 상공을 지난다. 비행기에서 영토가 바뀜을 기내 전자기기로 알 수 있다. 그만큼 진먼과 중국 본토가 가깝다. 그럼에도 진먼은 중국 땅이 아니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國共) 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오늘날의 대만인 중화민국의 영토였다. 진먼과 대만 섬의 거리는 200㎞ 정도다. 대만 땅이지만 대만보다는 중국 대륙에 훨씬 가까운 곳이다. 그런 이유로 진먼은 국공 내전 이후 지금까지 중국 인민해방군과 중화민국의 대만 국방군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최전선이다. 이 진먼다오에서는 실제로 두 번이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병우 기자는 이른바 '8·23 포전' 당시 중국과 대만의 포격전 취재를 위해 진먼으로 갔다. 8·23 포전은 중국 인민군이 1958년 8월 23일부터 44일간 각종 대포를 이용해 진먼다오 150㎢ 지역에 47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은 사건이다. 최병우 기자는 그해 9월 26일 진먼다오 취재 중 일본·대만 기자 등과 함께 상륙정을 타고 가다 높은 파도에 휩쓸려 배가 전복되면서 순직했다.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최 기자를 모신 진먼 충렬사는 대만 내정부 산하의 20개 충렬사 중 한 곳이다. 1953년 대만의 후롄(胡璉) 장군이 이곳에 국군묘지와 충렬사를 세운 뒤 2004년 대만 내정부와 진먼현이 공동으로 중건한 곳이다. 진먼다오 역사에 큰 공훈을 세운 이들의 위패를 모셔 그들의 뜻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최병우 기자가 머나먼 진먼다오까지 취재를 간 것은 중국과 대만의 전쟁이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8·23 포전이 더 커져 전면전으로 확대됐더라면 미국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주한미군을 빼 대만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었다. 베트남전 때처럼 한국군이 직접 대만에 파병됐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중국과 북한이 한반도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요즈음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또 예민하다. 대만의 총통 선거를 앞두고 중국은 연일 대만을 향해 군사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9일 대만에서는 실제 상황을 알리는 공습경보가 울렸다. 대만 총통 명의로 전 국민에게 전송된 이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돼 있다. 공습경보는 공교롭게도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이 국제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에 울렸다. 그 바람에 대만 비상사태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됐다. 중국이 뒤늦게 위성발사용 로켓이라고 해명했으나 현지 대만 사람들의 전쟁 공포는 극에 달했다.
대만 총통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다. 1996년 대만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독립 성향 정당이 3연임에 성공했다. 민진당이 12년 동안 장기 집권하며 대만 독립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됐다. 민진당은 미국과 더 밀착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대만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동북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벌써부터 대만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중국과 대만의 통일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는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기로 한 미국 방산업체 5곳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또 대만산 화학품목에 대한 관세 감면을 중단했다. 급기야 대만 상공에 정찰 풍선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보내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특히 중국-대만 전쟁 발발 시 한국의 GDP가 23.3% 넘게 감소하면서 전쟁 당사국인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경제적 피해 규모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전쟁을 일으킨 중국보다도 한국이 보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경고다. 우리가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등장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