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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칼럼] 삼양라면, 안성탕면, 신(辛)라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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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칼럼] 삼양라면, 안성탕면, 신(辛)라면, 그리고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
필자는 삼양식품 지점장 출신이다. 1977년 4월 입사하여 최종 부산지점장 시절 우지 사건을 겪은 뒤, 1990년 4월에 퇴사했으니, 만 13년을 라면회사 관리부서와 일선 영업을 담당했었다.

1975년 라면 시장점유율은 삼양식품 절대 우위로 약 90% 이상 점유했다. 상대사 롯데 공업은 당시 출시한 농심라면에서 착안해 상호를 농심으로 바꾸고 1976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70년대 농심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로 소고기 라면을 출시했으나, 삼양라면 아성에 밀렸다. 따라서 우회전략으로 성공한 새우깡에 이어, 양파깡·고구마깡이 일등 공신이 되었다.

한국 라면 시장은 1980년대 초반까지 삼양라면의 독점구조였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3년 9월경 독일 기술에 의한 '동결건조방식' 스프로 생산된 농심 안성탕면의 출시부터다.

당시 삼양라면은 시중 소매가격이 80원으로 소매점은 소비자에게 20원을 거스름으로 주었다. 반면, 농심 안성탕면은 품질은 높이고 소비자 가격은 120원이었지만, 실제는 100원에 팔았다.

1980년대는 '86서울 아시안 게임·88서울 올림픽'을 겪으면서, 소비자의 눈높이가 급격하게 향상되었다. 농심은 틈새시장에 공격 경영했지만, 삼양은 방만함과 미투(Me Too) 전략에 의존했다.

당시 삼양식품은 삼양라면과 뽀빠이 판매로 성공한 자금을 동종 산업에 투자하지 않고, 종합식품을 화두로 대관령 목장 투자에 의한 유가공·장류·사료·식용유 등 사업 다각화에 열중했다.

반면, 농심은 안성탕면의 성공에 자극, 상품 광고·고급화에 주력했다. 김치·새우 등 상품 다양화와 고급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자, 1982년 11월경 출시된 너구리마저 두각을 나타냈다.너구리라면은 기존의 갈색 국물에서 각종 '건더기 스프'가 따로 있는 고급 라면의 개념으로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간다'라는 이색 광고와 함께, 상품 고급화에 성공한 두 번째 작품이다.
컵라면 출시도 농심이 두각을 보였다. 2005년 9월 농심의 사발면, 별도 스프가 포함된 안성탕면 컵라면에 이어, 2009년 7월 너구리 컵라면이 출시되면서, 시장 분포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1984년 3월 출시된 농심 짜파게티는 이전의 롯데 짜장면·삼선짜장면·농심 짜장면 등 유성 스프 혼합 방식의 실패를 딛고, 분말 스프에 의한 고급화에 성공하자, 시대적 변화를 절감했다.

필자는 울산영업소 소장으로 재직하던 1986년 10월 '매울 신(辛)'자의 라면이 농심에서 출시되면서 엄청나게 놀랐다. 당시 일본 영향으로 매운맛은 금기사항으로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당시, 농심 대표의 성씨 '매울 신(辛)' 출시는 파격이었다. 필자는 시장 추세가 매운맛으로 변함을 예측하지 못했지만, 꿰뚫고 보았던 기업 오너의 예지·결단은 결국 회사를 반석에 올렸다.

한국 최초로 일본의 기술 전수로 만들어져서 담백한 닭고기 맛을 내세우고 20년 동안 일등 자리를 고수하던 삼양라면은 안성탕면·너구리·신라면 등 내리 신제품 출시에 놀라고 당황했다.

삼양식품 위상 하락은 전두환 군사정부의 청보·팔도·빙그레와 오뚜기 등 경쟁자에 이어, 틈새시장을 공략한 농심 고급 라면의 성공에 휘청거리다, 우지 파동 여파로 상승 기회를 완전히 놓쳤다.

'사나이 울리는 농심 신라면' 위력은 부산항 출입 러시아 선원들에 이어, 본고장 일본은 물론, 미국 등 해외에 수출되면서, 한국을 알리는 대표 상품으로 그 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호평하면서, 고토를 노리고 있다. 한국의 매운맛이 교포사회를 넘어, 한류 열기로 월마트·까르푸·알리 등 유통 채널을 통해 세계만방에 팔리길 희망한다.

한국의 라면은 매운맛에 이어, 지역화·현지화를 통해, 영양과 맛, 용기·포장·조리방식의 다양화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건강하고 안전한 상품개발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날을 기대한다.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