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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엔비디아 실적 발표와 닷컴 버블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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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엔비디아 실적 발표와 닷컴 버블의 교훈

FOMC 그린스펀 '비이성적 과열"

엔비디아  실적발표가 뉴욕증시를 흔들고 있다. 뉴욕증시뿐 아니라 달러환율 국채금리 국제유가 그리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등 가상 암호화폐도 엔비디아 실적발표에 요동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엔비디아 실적발표가 뉴욕증시를 흔들고 있다. 뉴욕증시뿐 아니라 달러환율 국채금리 국제유가 그리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등 가상 암호화폐도 엔비디아 실적발표에 요동치고 있다.
미국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1996년의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눈앞에 두고 모두가 들떠 있던 12월 5일 저녁 미국 연준(Fed)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이 폭탄 발언을 했다. 그린스펀은 미국 기업연구소(AEI) 디너 만찬 연설에서 뉴욕증시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닷컴 버블"의 서막을 알리는 유명한 말이다. 그린스펀의 ‘비이성적 과열’ 경고가 나왔을 때 다우존스 지수는 6400이었다. S&P500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대공황 직전인 1929년 10월 수준이었다.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 거품론을 제기하자 다음 날 일본 도쿄증시를 시작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홍콩·유럽을 거쳐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뉴욕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의 폭락 상황은 일주일 만에 진정됐다. 그린스펀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당시 세계 경제는 막 대중화되기 시작한 인터넷 붐으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과 IT 신기술로 뉴욕증시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린스펀은 인터넷이 세계 경제에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주가가 너무 빠른 속도로 오른다면서 버블을 경고했던 것이다. 그린스펀의 경고는 인터넷 광풍 속에 이내 묻혔다.
뉴욕증시는 그 후 5년 동안 급성장했다. 그러다가 2000년 봄 기술주 거품이 터지면서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스닥 지수는 정점에서 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2000년 3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943일간 고점 대비 78% 가까이 급락했다. 나스닥 역사상 가장 큰 하락폭이다. 다우존스 지수도 그린스펀의 경고 시점인 5년 전 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벤처기업이 각광받으면서 다신 꺼지지 않을 것 같던 뉴욕증시가 결국 무너진 것이다. 벤처의 요람으로 불렸던 독일의 노이어 마르크트(Neuer Markt: 신시장)는 2003년에 아예 시장과 지수 자체가 없어지고 나머지 기업들도 기존 주식시장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폐지됐다.

IT는 1980년대 말에 인터넷이 민수용으로 풀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에 인터넷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 뉴욕증시에서 첨단주 랠리가 시작됐다. 인터넷/통신 관련 주가가 각광받으면서 광풍이 일기 시작했다. 태동기를 갓 넘어선 인터넷 산업은 당시 사람들에게 초유의 관심사였다. 당시 사람들은 인터넷 산업이 기존 산업을 뛰어넘어 전부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곧이어 시작된 인터넷 사업체들은 막대한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코즈모 닷컴, 부 닷컴, 팻츠 닷컴 등 스타트업들에는 거액의 돈이 몰렸다. 닷컴이라는 이름만 걸치면 돈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 뉴욕증시는 5년 이상의 장기 호황을 구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인터넷이 일반인들에게 보급된다 한들 56K 모뎀이나 케이블 인터넷, ISDN선에 그쳤다. ADSL 같은 고속 인터넷망은 보급이 잘 안 돼 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이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와 웹이니깐 무언가 더 좋겠지라고 기대했지만 인터넷 사용 인구의 대다수가 저속 인터넷을 써야 했던 환경 때문에 웹서비스는 느리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웹서비스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키웠다. 인터넷 기술 발전이 꿈과 이상에 훨씬 못 미쳤던 것이다. 결국 버블이 꺼지면서 2001년에는 시장이 붕괴됐다. 무려 5조 달러 이상의 시총이 날아갔다.

닷컴 기업들도 줄줄이 쓰러졌다. 웹밴(Webvan·1999~2001)이나 빈즈닷컴(beenz.com·1998~2001)이 대표적인 사례다. AMD와 인텔은 주가가 4분의 1 토막이 났다. 시스코(Cisco)와 퀄컴, 마이크론은 주가가 90% 하락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주가가 2년 동안 무려 95%나 하락했다. 2000년 말기에는 대부분의 닷컴 기업들이 스스로 파산이나 도산의 길을 선택했다. 닷컴 기업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거액의 돈을 날려야 했다.

한국의 닷컴 버블은 뉴욕증시보다 좀 늦게 시작됐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넘기면서 당시 집권한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는 코스닥 시장과 중소기업 위주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쏟아냈다. 코스닥·코스피에도 급격하게 IT버블이 불타올랐다. 인터넷 등 IT산업이 신경제 신산업으로 각광받으면서 바이코리아 펀드, 박현주 펀드 등의 애국 마케팅 자금들까지 겹쳐 닷컴 기업들을 중심으로 급격한 테마주 쏠림 현상이 발생했다.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코스닥과 코스피는 폭락했다. 2000년 당시 코스닥 지수의 최고점은 2000년 3월 10일의 2834.4였다. 이 최고점은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1996년 그린스펀의 경고를 받아들였더라면 겪지 않을 수도 있었던 참사였다.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그린스펀의 "비이성적 과열"은 증시 과열을 경고하는 대표적 메시지가 되었다. 그린스펀의 경고는 예지력 있는 관점으로 인식돼 '비이성적 과열'이란 표현은 활황기에 투자자 정서를 묘사하는 데 무수히 반복 사용됐다. 그린스펀은 1926년생이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처음 이사회 의장으로 발탁된 그린스펀은 이후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임됐다. 2006년 1월 31일, 벤 버냉키에게 연준 의장을 넘길 때까지 무려 30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했다.
요즘 엔비디아(NVIDIA)와 오픈AI 등이 주도하는 인공지능(AI) 열기가 뜨겁다. 엔비디아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뉴욕증시는 엔비디아 돌풍으로 그야말로 요동치고 있다. 뉴욕증시는 물론 달러 환율, 국채 금리, 국제 유가, 금값 그리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 암호화폐도 엔비디아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급등락을 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뉴욕증시에서 시가총액 3위에 올랐다. 불과 1년여 전까지 해도 자그마한 게임용 반도체 업체였던 엔비디아가 AI 열풍을 타고 세계에서 셋째로 값비싼 기업에 오른 것이다. 한때 뉴욕증시 대장주로 군림하던 구글과 아마존이 엔비디아에 밀려 4위와 5위로 내려앉았다. 엔비디아보다 시총이 더 큰 회사는 이제 MS와 애플뿐이다. 이런 기세라면 머잖아 애플과 MS도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오를 수도 있다.

뉴욕증시 일각에서는 AI 관련주의 폭발이 그린스펀의 '이성적 과열' 경고 당시 닷컴 폭발과 닮아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가치투자의 가치평가 기초가 되는 주가수익비율(PER) 지수를 놓고 보면 닷컴 버블 때보다 요즘 뉴욕증시가 더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지금 뉴욕증시의 생성형 AI 열풍을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의 PER은 90을 웃돈다. 통상적으로 뉴욕증시에서는 PER 20 정도가 적정한 것으로 본다. 이 같은 기준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엔비디아의 미래 수익을 대입하면 PER은 크게 내려간다. 엔비디아의 실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만큼 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반론이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은 회사 이름에 닷컴만 들어가면 주가가 급등하는 등 실체가 없이 막연한 기대에 의한 것이었다면, 최근 엔비디아의 랠리는 실적이라는 확실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 닷컴 버블과 차원이 다르다는 시각이다.

AI 관련주 주가 급등이 실적에 기반한 근거 있는 랠리인지, 아니면 그린스펀의 '비이성적 과열'인지는 오로지 실적만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를 주목하는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