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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백운대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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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백운대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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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절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백운대를 올랐다. 개천절처럼 명토 박힌 날은 집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기보다는 왠지 산에라도 올라 일출을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운대는 북한산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북한산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만경대, 인수봉과 함께 삼각산이란 이름을 낳게 한 세 봉우리 중 유일하게 도보 산행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백운대는 북한산 특유의 장쾌하고 시원한 바위산의 조망이 펼쳐져 일출 장소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검푸른 새벽, 자전거를 타고 우이동 버스 종점까지 이동한 뒤 신발끈을 조여 매고 도선사 주차장을 향해 비탈진 산길을 올랐다. 산길을 오를수록 조금씩 거칠어지는 나의 숨소리와 발소리 사이로 계곡의 물소리가 끼어들고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엔 별들이 총총 떠 있다. 저 별자리가 오리온자리던가. 사냥꾼인 오리온이 전갈에게 물려 죽은 탓에 전갈자리와는 한 하늘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도선사 주차장까지는 새벽예불을 보러 가는 차량들이 전조등 불빛을 앞세우고 간간이 정적을 깨며 지나가기 때문에 조용히 사색하며 걷는 것은 힘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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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위 백운탐방지원센터에서 정상까지 약 2.1km로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좀 더 부지런해야만 한다. 산을 오르다가 힘들면 쉴 수는 있겠지만 떠오르는 태양을 늦출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해를 보는 일이나 꽃을 보는 일이나 때를 맞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나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헤드 랜턴을 켜고 산을 오르는데 조금씩 동쪽 하늘이 훤해진다.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행여나 해를 놓치는 건 아닐까 싶어 조급증이 인다. 산행할 때 중요한 것은 오버하지 않는 것이다. 안전 산행은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해가 뜬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각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산 정상에서 마주하는 일출이 더 감동적인 것은 일출, 그 자체도 찬란하지만 힘들게 산을 오른 노력에 주어지는 보상이기 때문이다. 백운대에 올랐을 때 나는 아름답고 찬란한 일출의 순간에도 놀랐지만 그 이른 시간에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데 또 한 번 놀랐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북한산, 그중에도 백운대에 올라 일출을 직관하는 감격의 순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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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에서 우듬지 쪽을 바라보면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어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산정에서 숲을 내려다보면 모든 나무가 유순해 보인다. 우듬지란 나무의 맨 꼭대기에 있는 줄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침엽수의 경우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자라면서 아래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것을 통제한다.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강한 힘으로 이끄는 덕분에 나무는 원추형으로 곧고 길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우듬지는 꿈과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인 백운대를 오르는 일, 백운대에 올라 일출을 보는 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망을 비는 일. 이 모두가 꿈과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산을 내려오다 구절초를 보았다. 꽃 앞에서 사진 찍느라 엎드려 있는 나를 보고 지나던 사람이 엄지를 추켜세우며 꽃 이름을 물었다. 아홉 번 죽었다 다시 피어도 첫 모습 그대로 피어난다는 구절초랍니다. 딱히 일출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도 산행하기 좋은 가을이다. 아직 산빛은 여전히 초록 일색이지만 머지않아 온산이 원색으로 타오를 것이다. 꽃을 보든, 단풍을 보든 상관없다. 산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