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만 상품전략연구소장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카타르 국빈 만찬장에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다시 만났다. 지난해 12월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첫 만남을 가진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이번 만찬에서 한국 기업인으로 초청받은 이는 정 회장이 유일했다. 트럼프 가문과의 소통 창구로서 정 회장이 사실상 국내 유일의 민간 채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만남은 단순한 사적 인연을 넘어 기업인이 민간 외교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카타르 국왕은 정용진 회장을 ‘아시아 내 미국 소통의 가교’로 소개했고, 알자지라와 ABC 등 주요 언론이 이를 생중계했다. 정 회장은 만찬 이후 두바이로 이동해 현지 유통업계와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귀국할 예정이다.
트럼프 부자와 신세계 정용진 회장의 접촉은 민간 경제 외교에 큰 물꼬를 텄다.
트럼프 주니어의 방한도 주목할 만하다. 단순 친선 방문이 아닌, 이틀간 한화, CJ, 롯데, 네이버, KB금융 등 국내 주요 기업과 연쇄 접촉했다. 이들 기업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통상 정책 변화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 민간 외교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특히 한화는 미국 내 태양광 생산 확대를 위해 조지아주에 3조 원을 투자해 ‘솔라허브’를 구축 중이다. 이 시설은 연내 8.4GW 생산능력을 확보하며, 연간 2조 원 수출 효과를 기대한다. 트럼프 주니어와의 접촉은 이런 투자 흐름과 정책 변화를 연결하는 상징적 행보다.
트럼프 일가와의 네트워크는 향후 한반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 외교의 사전 포석이다.
민간 외교가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최근 외교는 정부뿐 아니라 민간이 함께 움직이는 다채널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용진 회장의 행보는 기업인이 외교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부동산업자 스티브 위트코프는 외교 경험이 없었지만 트럼프 행정부 중동 특사로 임명돼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경제협력을 조율했다. 카타르는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 강화를 위해 보잉 747 항공기를 외교 선물로 제공했고, 프랑스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는 대통령과 함께 순방하며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기여해 ‘브랜드 외교관’으로 불린다.
최근 사례로는 베르나르 아르노가 G7 정상들에게 루이비통 트렁크를 선물했고,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 스타링크를 신속 지원했다. 일본 손정의는 사우디 왕세자와 밀월 관계를 통해 ‘비전펀드’ 100조 원을 유치했고, 테슬라 중국 공장 설립에도 마윈이 중재자로 나섰다. 기업인의 단 한 번의 접촉이 정상회담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민간은 이제 외교 주변이 아니라 경제와 안보를 잇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CJ·한화·네이버, 조용한 민간 외교 접촉
한국 주요 그룹도 이미 물밑에서 민간 외교 채널을 강화 중이다. CJ 이재현 회장은 미국 냉동식품 시장 확대를 위해 3조 원을 투자해 7개 생산시설을 운영 중이며 2026년까지 1조 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롯데는 뉴욕에 바이오 의약품 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네이버는 실리콘밸리에 AI 연구소를 설립해 글로벌 기술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KB금융은 미국 금리와 규제 변화에 대응해 3조 원 이상을 미국 인프라 펀드에 운용 중이다. 민간이 먼저 협상의 문을 열고, 정부가 그 뒤를 받치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트럼프와 직통 채널 필요
트럼프 주니어와의 접촉은 시작일 뿐이다. 트럼프 본인과의 공식 소통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방위산업, 조선, 태양광 등 트럼프 행정부와 연계된 산업을 이끄는 한화그룹은 민간 외교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지금은 ‘트럼프 주니어 굿바이’가 아니라, ‘트럼프 본인 헬로우’를 준비할 시점이다. 미국 대선 결과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기업의 외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단발성 일정이 아닌 장기적 전략 일정이 필요하다.
정부도 이를 단순 재계의 개별 행보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외교부, 산업부, 통상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민관 협력의 경제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 경제 동맹, 지금이 기회
정용진 회장과 트럼프 부자의 만남은 외교가 더 이상 정부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줬다. 기업이 주도하는 민간 외교는 국가 간 신뢰를 넓히고 경제 협력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새 열쇠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미국 대선과 글로벌 통상 질서가 요동치는 시기에 한국 기업은 민간 외교의 창을 더 넓게 열어야 한다. 정 회장의 선제적 행보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제 정부와 민간이 함께 손잡고 더 큰 외교 무대에 나서야 한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외교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임광복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a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