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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중 무역전쟁 속 한국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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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중 무역전쟁 속 한국 선택은

이학만 상품전략연구소장
이학만 전 국회부의장 특보(현 상품전략연구소장).이미지 확대보기
이학만 전 국회부의장 특보(현 상품전략연구소장).

2025년 5월 미국과 중국이 다시 무역전쟁의 무대에 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과 동시에 2018년 방식의 관세 전략을 반복했고, 중국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정면 승부로 맞섰다. 양국은 겉으로는 타협한 듯 보이지만 ‘제네바 합의’는 사실상 미국의 후퇴로 읽힌다. 이번 충돌은 단순한 무역 마찰을 넘어 체제 경쟁의 한 단면이다. 한국도 ‘강대국의 게임’ 속에서 살아남을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다.

트럼프 1기 무역전쟁, 승자는 없어


트럼프는 2017년 취임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전면전에 나섰다. 최대 적자국인 중국을 정조준했고, 2018년에는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보복 관세를 시행했고, 갈등은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미국은 총 37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으며, 중국도 미국산 농산물과 자동차를 겨냥했다.

이 충돌은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을 주었고, 양국 모두 피해를 입었다. 2020년 1월,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양측은 '1단계 합의'에 서명했다. 중국은 농산물 수입 확대와 지식재산권 보호를 약속했으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이행은 차질을 빚었다. 트럼프의 관세 전략은 체제 변화는커녕 오히려 미국 소비자와 농민에게 부담만 안겼다. 일부 산업 보호와 기술 유출 견제에는 성과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구조 개선에는 실패했다.

강경해진 트럼프 2기, 미국에 역풍


당시엔 중국이 당황했고 유화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다르다. 중국은 ‘양보해도 얻는 게 없다’는 교훈 아래 장기전을 택했다. 관세 인상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수 중심 산업 구조 전환과 기술 자립에 속도를 냈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할 의사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트럼프의 전략은 미국 경제에 되레 역풍을 불러왔다. 2024년 기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관세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반도체, 전기차, 의류 등 주요 소비재의 가격이 상승했고, 공급망 재편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역전쟁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다시 상승세를 탔고, 제조업 회복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네바 합의, 실질적 승자는 중국


제네바 합의의 실질적 승자는 중국이다. 시진핑 정부는 무역전쟁을 내수 주도형 산업으로의 전환 기회로 활용했다. 중국은 첨단 제조, 반도체, 전기차, AI 등 전략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유기업 간 유기적 협력을 강화하며 국가 주도의 위기관리 능력을 입증했다.

반면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을 줄여야 했다. 결국 미국이 먼저 협상에 나섰고, 중국은 이를 통해 ‘외부 압력은 내부 혁신의 기폭제’라는 내러티브를 강화했다. 중국은 RCEP 등 다자 무역 체계를 적극 활용하고, 외자 유치 전략도 병행하면서 세계 공급망의 핵심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구체화했다.

미국 정부는 이번 합의를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대응이라고 포장했다. 백악관은 이번 관세 조정을 ‘미국 기업과 노동자 보호의 성과’라 주장했으며, 철회된 관세는 ‘상호 호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주요 언론은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치적 필요에 따른 후퇴”로 해석했고, 뉴욕타임스는 “핵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실질적 이득 없이 관세만 낮췄다”고 지적했다. CNN은 “이번 조치가 인플레이션 완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였다.

반면 중국은 자국 외교와 경제 전략의 승리로 해석한다. 중국 상무부는 “국가의 원칙을 지키며 산업을 보호했다”고 평가했고, 관영 언론은 “중국의 인내와 전략적 의지로 얻은 성과”라고 보도했다. 오히려 이번 사태가 중국의 기술 자립과 글로벌 위상 강화의 계기가 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미국·중국 눈치 볼 때가 아니다


이번 사태는 한국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감정이 아닌 전략, 단기 대응이 아닌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미·중 어느 한 편에 줄서기보다는 반도체, 배터리, 핵심 원자재 등 전략 산업의 자립이 더욱 절실하다. 공급망 주권을 강화하고, 수출 시장 다변화와 외교 채널의 다자화를 추진해야 한다.

무역 갈등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그때마다 줄을 설 것인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힘을 기를 것인가. 제네바 합의는 결국 체력이 강한 쪽이 웃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한국은 이제 생존 전략을 넘어 미래 전략을 세워야 한다.

냉정한 외교, 초당적 산업 전략 필요


미·중 무역전쟁은 단기 관세 갈등을 넘어 디지털 기술 주도권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AI, 배터리, 반도체 등 전략 기술 분야에서 양국은 장기전에 돌입했다. 관세는 이들 산업의 공급망을 흔들고, 한국 기업에도 비용과 기회를 동시에 던져준다.

한국은 기술 자립과 글로벌 협력망 다변화를 통해 강대국의 선택 강요를 피할 힘을 길러야 한다. 실리를 중심으로 한 외교와 산업 정책이 중요하다. 6월 3일 대선 이후, 정치권은 초당적 산업 전략을 수립하고, 경제계는 기술 투자와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이성과 실리,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국가 전략이 지금 한국에 필요하다.


임광복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a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