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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연의 프롭테크 '썰'] 920억 달러 베트남 시장, ‘혼자 싸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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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연의 프롭테크 '썰'] 920억 달러 베트남 시장, ‘혼자 싸우지 마라’

윤수연(알스퀘어 글로벌투자실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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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연(알스퀘어 글로벌투자실 상무)
베트남 진출의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혼자선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920억 달러. 한국이 베트남에 누적 투자한 금액이다. 숫자만 봐도 압도적이다. 하지만 숫자 뒤에 숨은 진실은 더욱 흥미롭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베트남 진출 열풍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우리 알스퀘어베트남에 접수된 베트남 입지 상담 문의가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반도체 패키징 기업 시그네틱스가 지난해 8월 베트남 북부 빈푹성에 1억 달러 규모의 공장 건립을 발표한 이후 관련 업계의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무역 갈등의 여파 그리고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외국인투자 유치 정책이 맞물리며 '베트남 2.0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다.

다시 열리는 기회의 창, 하지만 문턱은 높아졌다


2000년대 초반 베트남이 '저임금 생산기지' 정도의 의미였다면, 지금은 '전략적 거점'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단순히 공장을 짓고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동남아 전체를 아우르는 허브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 당연히 진출 전략도 훨씬 정교해져야 한다.

최근 베트남을 다녀온 한 중견기업 대표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엔 가서 보고 결정했는데, 이제는 다 준비하고 가야 한다더라."

정답이다. 베트남 진출 환경이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의미다. 북부와 남부의 산업 생태계 차이, 급변하는 노동법과 세제, 까다로워진 인허가 절차 그리고 치열해진 경쟁까지.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일단 가서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면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주목할 건 최근 미국과 베트남 간 진행 중인 무역 협의다. 특정 품목에 대한 특별관세 부과가 유력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생산 거점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거시적 변화를 놓치고 베트남에 뛰어든다면 투자금 회수는커녕 손실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런 정보들이 파편화돼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은 부동산대로, 법률은 법률대로, 세무는 세무대로 따로 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체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결국 '정보의 비대칭'이 베트남 진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성공 기업들의 공통점: '혼자 싸우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알스퀘어베트남을 통해 베트남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기업들을 분석해보니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혼자 달려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성공 기업들은 베트남 현지에 발을 딛기 전부터 든든한 파트너십을 구축해뒀다. 부동산은 물론 법률·세무·금융·물류까지 전 영역에 걸쳐 현지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한 상태에서 진출 결정을 내렸다.

반면 실패한 기업들은 대부분 '우리끼리 해보자'는 마인드로 접근했다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허둥지둥하는 패턴을 보였다. 베트남어 계약서 해석 문제로 임대료 분쟁에 휘말리거나 현지 노동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인력 채용에서 막히는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 최대 투자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국은 물론 일본·대만·싱가포르 등 경쟁국들도 베트남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과 유럽 기업들도 베트남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유지하려면 접근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과거처럼 '일단 가서 해보자'는 식의 용감함보다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현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진출이 필요하다.

베트남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하지만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 충분한 정보와 든든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계획이 성공의 열쇠다.

920억 달러 베트남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혼자 싸우지 마라'. 이것이 지난 3년간 현장에서 체득한 가장 확실한 성공 공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