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LG·현대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 전장 시장에서 서로 전혀 다른 전략과 속도로 미래 차 패권을 놓고 맞붙고 있다는 점은 전례 없는 현상으로 평가받는다.
우선 삼성의 전장 분야 행보를 살펴보면, 겉으로 보기엔 비교적 조용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핵심 부품에 집중하는 '관망 우위' 전략을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시스템LSI·파운드리) 분야에서 테슬라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과 협력을 이어가며 고성능 컴퓨팅 칩과 이미지 센서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삼성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기술을 미래 차라는 새로운 응용처에 접목하는 전략이다. 다만,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모듈이나 구동계 같은 시스템 단위의 전장 진출은 여전히 신중하다.
2016년 인수한 하만은 차량용 오디오, 내비게이션,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 중심의 기업 간 거래(B2B) 솔루션을 제공하며 삼성의 전장 사업 교두보 역할을 한다. 하만은 주로 완성차에 시스템을 납품하는 티어(Tier)-1 기업으로 활동하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기술을 통합하는 시너지는 아직 초기 단계로 평가된다.
반면 LG그룹은 전장 사업을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규정하고 LG전자(VS사업본부),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 LG이노텍의 '3대 축'을 중심으로 사활을 걸었다. LG는 명실상부한 '전장 종합상사'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디지털 콕핏 등 차량 내 소프트웨어와 통신 솔루션을 주력으로 한다. 매출액이 급성장하며 그룹의 미래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
캐나다 마그나 인터내셔널과의 합작법인(JV)인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도 현대차 전기차 플랫폼을 비롯해 주요 완성차에 구동 모터, 인버터 등 핵심 전기차 구동계를 납품하며 글로벌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LG이노텍은 차량용 카메라 모듈, 라이다(LiDAR), 통신 모듈 등 자율주행차의 '눈'과 '신경망' 역할을 하는 센서 및 광학 부품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고성능 센서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장 사업을 외부 기업이 아닌 그룹 내부의 역량으로 내재화하고, 모든 시스템을 수직 통합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타사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형 기술 생태계'를 구축해 미래 경쟁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현대모비스는 그룹 전장 사업의 핵심으로, 자율주행 핵심 부품(레벨3 이상), 섀시, 램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체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차량용 제어기 등 통합 모듈 공급을 주도하고 있다. 과거 현대오트론(현재 일부 기능 흡수)이 맡았던 차량용 반도체 설계 역량은 물론 차량 내 운영체제(OS) 플랫폼,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기술까지 그룹 내부에서 모듈화하며 통제력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대차는 이러한 수직 통합형 전장 구조를 바탕으로 차량 판매 후에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추가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SDV 시대로의 전환이 가장 핵심이다.
전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모터·센서·칩·배터리가 자동차의 뇌와 심장을 대신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판을 선점하는 자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