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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의 프롭테크 '썰'] 쓰레기통이 도시의 미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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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의 프롭테크 '썰'] 쓰레기통이 도시의 미래를 말한다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미래에 스스로 움직이는 파란색 쓰레기통이 조용히 거리를 가로지르는 모습.이미지 확대보기
미래에 스스로 움직이는 파란색 쓰레기통이 조용히 거리를 가로지르는 모습.
2030년 서울 강남구 한복판. 오전 7시 스스로 움직이는 파란색 쓰레기통이 조용히 거리를 가로지른다. 센서가 감지한 용량에 따라 최적 경로를 계산해 수거 지점으로 향하는 모습을 출근길 시민들은 무심하게 받아들인다. 같은 시각 뉴욕 맨해튼에서는 인공지능(AI) 로봇이 24시간 가동되는 선별장에서 플라스틱과 종이를 완벽하게 분류하고 있다. 런던 금융가의 오피스 빌딩은 폐기물 데이터를 바탕으로 ESG 등급을 월 단위로 평가받고, 이것이 임대료와 투자 가치를 결정한다.

공상과학소설 같지만, 이는 현실이 되고 있는 스마트 시티의 일상이다. 화려한 자율주행차나 메타버스 행정서비스가 아닌, 가장 평범한 쓰레기통에서 도시 혁신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

자율주행 쓰레기통, 도시를 움직이는 새로운 주체


자율주행 쓰레기통(Self-Driving Bins)은 IoT 센서와 GPS,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결합한 차세대 도시 인프라다. 내장된 초음파 센서가 쓰레기 용량을 모니터링한다. 설정된 임계점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수거 신호를 발한다. 동시에 바퀴 구동 시스템이 작동해 사전에 설정된 수거 지점까지 스스로 이동한다.

핵심은 경로 최적화 알고리즘이다. 교통 상황과 보행자 밀도, 다른 쓰레기통의 위치 등을 종합 분석해 최단 경로와 최적 시간을 계산한다. 일부 시스템은 수거 차량과의 실시간 연동까지 지원해 차량이 도착하기 직전에 수거 지점으로 이동하는 정교함을 보여준다.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싱가포르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며, 기존 대비 수거 효율성이 35% 향상되고 인건비는 20% 절감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다만 초기 도입 비용이 기존 쓰레기통 대비 20배가량 높고, 도난과 파손 위험, 보행자 안전 문제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단일 분리수거 시스템과 AI 로봇의 만남


Single-stream 재활용 시스템은 사용자가 모든 재활용품을 하나의 용기에 넣으면, 이후 과정을 AI 기반 로봇이 처리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복잡한 분리배출 규칙을 단순화해 시민 편의성을 극대화한다. 동시에 후단 공정에서 첨단 기술로 정확도를 확보한다.

고해상도 카메라와 근적외선 스펙트로미터가 재질을 식별하고, 로봇 팔이 분당 60~80개 품목을 정확히 분류한다. 최신 시스템은 오염된 재활용품까지 감지해 별도 처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는 이미 전체 재활용 프로그램의 60% 이상이 이 방식을 채택했고, 유럽연합은 2025년까지 주요 도시의 80% 전환을 목표로 한다. 다만 분류 정확도가 수작업 대비 5~10% 낮고, 설비 투자 비용이 높아 중소 도시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

컨테이너화를 통한 데이터 인프라 혁명

컨테이너화(Containerization)는 건물별 표준화된 폐기물 용기를 도입하고, 각각에 스마트 센서를 부착해 배출량과 배출 시간, 내용물 구성까지 데이터화하는 시스템이다. 단순한 수거 효율성 개선을 넘어 도시 전체의 자원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로 발전하고 있다.

RFID 태그와 QR 코드를 통해 용기별 고유 식별이 가능하고, 로드셀 센서로 중량을 측정한다. 일부 고급 시스템은 가스 센서를 통해 음식물 쓰레기의 부패 정도까지 감지해 최적 수거 시점을 예측한다. 수집된 데이터는 도시 계획과 상권 분석에 활용된다. 특정 지역의 폐기물 패턴을 분석하면 유동인구와 소비 트렌드를 역추산할 수 있고, 이는 부동산 투자와 상업시설 입점 결정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

프롭테크와 ESG가 만나는 새로운 투자 영역

스마트 폐기물 관리는 환경문제 해결을 넘어 부동산 가치 창출의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 중이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도시 폐기물이 2016년 20.1억 톤에서 2050년 34억 톤으로 증가할 전망이어서 이 영역의 기술 혁신은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건물의 폐기물 관리 효율성이 ESG 평가와 직결되면서 투자 의사결정의 중요 변수로 떠올랐다. 글로벌 부동산 펀드들은 건물별 폐기물 배출량과 재활용률을 투자 심사 기준에 포함시키고 있다. 깨끗하고 체계적인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갖춘 오피스와 상업시설은 임대 프리미엄을 형성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이 신규 개발 프로젝트에 스마트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일부 프롭테크 스타트업은 건물별 환경 데이터를 수집해 ESG 컨설팅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다.

AI 기반 분류 기술과 IoT 센서 네트워크, 데이터 플랫폼은 각각 독립적인 사업 기회이면서 동시에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플랫폼 비즈니스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폐기물 배출 패턴 분석을 통한 상권 예측 서비스나 건물별 환경 성능 평가 솔루션 등은 프롭테크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성장 영역이다.

기술 혁신이 만드는 도시 경쟁력의 새로운 지표


스마트 시티의 진정한 경쟁력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에 스며든 섬세한 시스템의 완성도에서 나온다. 쓰레기통 하나에도 센서와 AI, 데이터 분석이 결합되면서 도시 운영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도입 그 자체가 아니라 시민의 삶의 질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통합적 접근이다. 폐기물 관리 혁신은 환경 보호와 경제적 효율성 그리고 시민 편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영역이다. 앞으로 10년간 글로벌 스마트 시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을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혁신'이 될 것이다. 화려한 외관의 기술보다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인프라의 스마트화에서 진정한 도시 혁신이 시작된다. 쓰레기통이 스스로 움직이는 그날, 우리는 비로소 진짜 스마트 시티에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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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