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민경철의 법률톡톡] 영혼을 파괴하는 성범죄와 인생을 파멸시키는 무고죄

글로벌이코노믹

[민경철의 법률톡톡] 영혼을 파괴하는 성범죄와 인생을 파멸시키는 무고죄

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이미지 확대보기
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성(性)은 국가의 간섭이나 규제가 미치지 않는 내밀하고 자유로운 영역이다. 그러나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성범죄가 되면 예외적으로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되고, 형벌권이 발동하게 된다.

인간의 성 행위는 단순히 생물학적·신체적 작용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내면, 인격과 깊이 결부된 정신적 활동이다. 그래서 성범죄는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고 불리며,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중시할수록 성범죄에 대해 보다 엄정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만큼, 성무고 범죄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치우친 잣대는 법익 보호라는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고, 불균형을 악용하는 현상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보면 과연 공평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성범죄 수사에서는 이미 피해자중심주의가 확립되었다. 이는 피해자 진술을 중시하고 2차 피해를 예방하는 데 기여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피의자가 무고 가능성을 제기하거나 대질신문을 요청할 경우, 곧바로 2차 가해로 낙인찍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수사 초기 단계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이 위축되는 부작용을 키워왔다.
무고죄 수사 및 처벌의 현실은 또 다른 구조적 불균형과 모순을 드러낸다. 성범죄의 경우 비교적 쉽게 송치나 기소가 이루어지는 반면, 성무고 범죄의 수사 및 형사절차 진행은 쉽지 않으며 실제로 기소되거나 처벌에 이르는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다. 무고의 실체적 증명이 까다롭고 허위성 및 고의 입증 과정이 본질적으로 난해하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동일한 사건에서 비롯됨에도, 성범죄의 성립과 판단에 적용되는 기준과 무고죄의 성립 및 판단에 적용되는 기준이 현저히 다르다는 데 있다. 특히 무고죄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매우 엄격하게 관철되어, 범죄 성립의 문턱이 지극히 높게 설정되어 있다.

범죄 현황에 관한 통계 및 실태 연구에 있어서도 현저한 불균형이 확인된다. 성범죄 수사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통계와 연구는 늘 강조되어 왔지만, 무고에 관한 체계적 통계는 빈약하다. 무엇보다 성무고 범죄 현황을 알 수 있는 공식적인 경찰·검찰의 통계자료는 전무하며 실질적인 피해현상 또한 알 수 없다. 이는 성범죄 무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비해 체계적, 이론적 논의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한 진단 없이 효과적 치료는 불가능하기에 무고 양상과 동기를 규명하는 실증적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피해자보호 교육 및 성범죄 수사 매뉴얼은 체계화되어 있는 반면, 성무고 수사에 대한 교육과 매뉴얼은 전무하다는 점 역시 불균형한 실태를 방증한다. 무고 사안에 대해서도 표준화된 조사 매뉴얼을 개발하여 수사관의 주관이 불필요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하고, 합리적인 반대 증거 수집과 대질절차가 운영되도록 보완해야 한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역시 엄정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합리적·객관적 증거가 턱없이 부족한 사안에서 무리한 기소를 방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진술 자체의 일관성·구체성·정황적 합치성은 물론이고, 진술 이후의 행동 양상과 객관적 증거의 존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몇 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남성을 성범죄자로 처벌받게 만들고, 허위 고소해도 무고죄로 처벌받지 않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글이 공유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들의 목적은 합의금이나 금전적 이득뿐만 아니라, 앙심이나 보복, 사소한 이유 등 다양했으며 만연한 무고죄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제는 교육과 공공 캠페인을 통해 성범죄 피해 신고의 정당성과 동시에 무고의 위험성도 함께 알리는 균형적 담론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무고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이다. 이는 공정한 사법질서를 훼손하고 실체적 진실 발견을 방해하며, 한정된 수사자원을 왜곡된 방향으로 낭비하게 만든다. 특히 성범죄 영역에서 허위고소가 현실화되면, 사회적 신뢰와 정의 구현은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오남용으로부터 개인을 지켜야 하는 도구이다.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법의 힘을 독점시키는 것은 법을 협박과 보복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를 잠식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피해자 보호와 절차적 정의가 공존하는 체계이며, 이를 위해서는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제도 설계가 동시에 필요하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