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탁된 금전은 피해자가 수령할 수도 있고 끝까지 수령을 거부할 수도 있다. 다만 적정한 금액이 공탁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가해자가 피해 회복을 위해 일정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인정되어 감형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가해자의 엄벌을 원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일방적인 공탁으로 감형 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탁금회수동의서를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탁금회수동의서는 공탁자가 공탁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동의하는 서면으로, 결과적으로 공탁의 효력을 무력화하는 기능을 한다.
공탁금회수동의서가 제출되지 않는 한, 공탁금의 수령 여부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달려 있다. 피해자는 언제든지 이를 수령할 수 있으며, 공탁자는 임의로 공탁금을 환부받을 수 없다. 피해자가 끝내 수령하지 않은 상태로 10년이 경과하면 공탁금은 국고에 귀속된다.
형사공탁특례 제도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더라도 공탁을 가능하게 하여,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피해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곧바로 새로운 악용 사례를 낳았다. 피고인이 판결 선고 직전에 갑작스럽게 공탁을 하는 이른바 ‘기습공탁’, 감형을 받은 이후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는 틈을 이용해 이를 회수하는 ‘먹튀공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제도는 또 다른 방향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공탁금 수령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뒤, 공탁의 감형 효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탁금회수동의서와 엄벌탄원서를 제출하여 감형을 받지 못하도록 압박한 뒤, 정작 선고 직전이나 재판 종료 이후에 공탁금을 몰래 출금해 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재판부로 하여금 피해자가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양형 판단을 하도록 유도한 뒤, 결과적으로는 엄벌과 금전적 보상을 동시에 취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행태는 사법 절차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공탁자는 감형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공탁금까지 상실하게 되고, 그 권리는 사실상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다. 이를 제어하거나 시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대법원과 법제처 모두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명문 규정상 공탁자의 회수 절차나 구제 수단 마련은 입법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공탁자의 재산권이 제도적으로 보호되지 않고 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현행 제도의 구조적 한계는 재판 절차와 공탁 행정 절차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재판부가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 거부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고 이를 판결문에까지 기재하더라도, 해당 사실이 공탁소에 서면으로 통지되지 않는 이상 공탁법상 회수 요건은 충족되지 않는다. 재판에서의 사실 인정과 행정 절차상의 요건 충족이 서로 단절된 구조인 것이다. 이로 인해 공탁자는 재판에서 불리한 판단을 감수하고도, 공탁금은 묶인 채 어떠한 실질적 구제 수단도 갖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형사공탁이 더 이상 감형을 노린 형식적 수단이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 회복 제도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함께 공탁자의 선의 역시 제도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형사공탁 제도는 피해 회복 제도가 아니라 재판 전략의 도구이자 새로운 분쟁의 출발점으로 기능할 뿐이다. 선의를 전제로 설계된 제도가 그 선의를 가장 먼저 배제하는 구조라면, 그 제도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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