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문지형의 프롭테크'썰'] 데이터가 드러낸 부동산 시장의 '생얼'

글로벌이코노믹

[문지형의 프롭테크'썰'] 데이터가 드러낸 부동산 시장의 '생얼'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이미지 확대보기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석 달 사이에 서울 강남에서 기업 본사 96곳이 빠져나갔다. 전국에서 공시가가 가장 높은 아파트의 집주인 절반이 30·40대였다.

100억 원 넘는 아파트를 산 젊은 부자 15명 가운데 11명은 은행 대출 한 푼 없이 전액 현금으로 집을 샀다. 놀라운 숫자들이지만 더 놀라운 건 출처다. 이 사실들은 누군가의 추정이 아니라 프롭테크 데이터 솔루션이 밝혀낸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정보는 나오기 어려웠다. 기업이 어디서 어디로 이사했는지 알려면 등기소를 직접 돌아야 했고, 임대료를 비교하려면 건물주나 중개인에게 일일이 물어야 했다.

서울 25개 구의 기업 이동을 석 달치로 정리한다는 건 기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비싼 아파트를 누가 샀는지, 대출은 받았는지 전부 확인하려면 등기부 등본을 한 건씩 떼서 대조해야 했다. 정보는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한데 모아 분석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
프롭테크 데이터 솔루션이 이 구조를 바꾸고 있다. 알스퀘어의 RA(Rsquare Analytics)를 예로 들면, 전국 7000개 이상 오피스·물류센터의 임대료, 공실률, 실거래가, 층별 임차인 현황을 건물 단위로 모아 시계열 데이터베이스로 제공하는 상업용 부동산 분석 플랫폼이다.

최근에는 약 250만 기업의 재무·법인등기·이동 정보까지 결합해 지도 위에서 특정 지역의 기업 분포와 매출 변화, 본사 이전 흐름을 부동산 시세와 함께 볼 수 있게 했다. 같은 회사의 데이터허브(RD)는 등기부 등본, 토지대장, 건물대장 등 부동산 공적 장부 다섯 가지를 한 곳에서 열람·관리하는 서비스다.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장부를 하나씩 떼던 과거와 달리 한 번에 여러 건을 열람하고 PDF를 엑셀로 변환해 바로 분석에 쓸 수 있다.

등기 변동 알림 기능으로 소유권이나 근저당 변화도 실시간 파악이 가능하다. RA가 '시장 흐름을 읽는 망원경'이라면, 데이터허브는 '소유권과 권리관계를 꿰는 현미경'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도구가 실제 언론 보도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한 경제지는 RA 데이터로 서울 전체 자치구의 기업 본사 이동을 분석했다. 강남에서 675개 기업이 나가고 579개가 들어와 96개가 줄었다는 결론, 강남 임대료가 2년간 11.3% 오른 반면 외곽은 8.7%에 그쳤다는 비교, 마곡·고덕 신축 업무단지의 공실률 변화까지 모두 데이터에서 나왔다. 기자의 감이 아니라 숫자가 말한 것이다.

또 다른 매체는 데이터허브로 공시가 전국 1위 아파트 29가구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 분석해 소유주의 44%가 30·40대이고 65%가 대출 없이 집을 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00억 원 이상 서울 아파트 32건의 매수자 연령, 대출 여부, 실거주 현황을 낱낱이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기자들이 직접 데이터 설루션에 접속해 분석하고, 그 결과를 기사의 뼈대로 삼은 것이다. 감이나 소문에 기대던 부동산 보도가 검증 가능한 팩트 보도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는 기사 품질만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보도는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같은 정보를 준다. 기업 이동 흐름을 알면 어느 지역의 오피스 수요가 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고, 임차인은 적정 임대료를 가늠할 근거를 얻는다. 비싼 아파트를 누가, 어떤 조건으로 사는지 드러나면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정보 격차가 줄어드는 만큼 시장은 건전해진다.

물론 데이터가 전부는 아니다. 임차인이 실제로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는지, 기업이 왜 이사를 결심했는지 같은 맥락은 숫자만으로 잡히지 않는다. 현장 취재와 전문가 해석은 여전히 필요하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제멋대로 하는 해석이나 과도한 일반화의 위험도 커진다. 인공지능(AI) 기반 가치평가나 임대료 예측 같은 기능이 확대될수록 데이터를 만드는 쪽과 쓰는 쪽 모두 한계를 인식하는 균형 감각이 중요해질 것이다.

다시 처음의 숫자로 돌아간다. 강남을 떠난 기업 96곳, 현금으로 100억 원대 집을 산 젊은 부자 11명. 이 숫자가 힘을 갖는 이유는 크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롭테크 설루션이 부동산 데이터의 문턱을 낮추면서 시장의 실체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추측과 소문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