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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에 집중력을 뺏긴 우리 아이, 이제 AI에게 사고력을 뺏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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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에 집중력을 뺏긴 우리 아이, 이제 AI에게 사고력을 뺏긴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이미지 확대보기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AI교육팀장

아이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엔 짧은 영상이 문제였다. 1분도 안 되는 클립이 끝없이 이어지고, 다음 영상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전에 저절로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주의 경제(Attention Economy)'라고 불렀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상품이 되어 거래되는 구조였다. 그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생성형 AI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속내는 같다. 아이의 주의를 붙잡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가져간다. 장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은 1971년 한 심포지엄 강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정보가 풍부한 세계에서 정보의 풍요는 다른 무언가의 결핍을 낳는다. 정보가 소비하는 것은 수신자의 주의(attention)다. 따라서 정보의 풍요는 주의의 빈곤을 낳는다." 반세기 전의 경고지만, 오늘날 AI가 설계한 디지털 환경 앞에서 이 통찰은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난다.

숏폼 플랫폼이 먼저 이 원리를 작동시켰다. 짧고 자극하는 클립이 연달아 이어지고, 보고 싶은 영상만 골라 보여주는 알고리즘이 화면을 채웠다. 그 환경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은 하나에 오래 머무르는 법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것이 어색해졌고, 느린 것이 불편해졌다. 집중이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억지로 견뎌야 하는 무엇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여기서 한발 더 들어간다. 숏폼이 아이의 주의를 끌어당겼다면, AI는 그 주의가 닿아야 할 생각의 자리마저 대신 채워버린다.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2026년 초,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가 12~29세 재학생 12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AI 학업 활용 실태 보고서'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2025년 5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전역 학생들의 AI 숙제 활용 현황을 추적했다. 숙제에 AI를 활용한다는 학생 비율은 5월 48%에서 12월 62%로 빠르게 늘었다. 그런데 더 주목할 숫자가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학생의 67%가 "AI를 학업에 많이 쓸수록 비판적 사고 능력이 손상된다"는 진술에 동의했다. AI를 쓰면서도 그 사용이 자신의 비판적 사고를 해칠 수 있음을 아이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역설이 지금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본질을 꿰뚫는다. 편리함이 손안에 있을 때 불편함을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자기 조절 능력이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그 유혹을 스스로 거부하라고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생각하는 힘은 생각하는 경험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고, 방향을 잡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정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 비로소 사고의 근육이 단단해진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면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AI는 그 시간을 너무나 효율적으로 제거해 버린다. 아이가 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건너편 기슭에 데려다 놓는 식이다. 편리해 보이지만 그 아이는 결코 수영을 배우지 못한다.

유튜브 쇼츠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유튜브 쇼츠 로고. 사진=로이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이 변화를 감각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RAND 조사가 보여주듯 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쓴다. AI의 답이 매끄러울수록 아이는 그것을 자신의 이해로 착각하기 쉽다. 숙제를 마쳤다는 안도감은 있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체득했다는 감각은 희미하다. 그 공백이 쌓일수록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점점 더 불편해하게 된다. 사고력이 약해지는 것을 넘어 사고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기회의 소멸은 매우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된다.

숏폼과 AI가 아이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은 같은 궤도 위에 있다. 숏폼은 기다림을 없앴고, AI는 씨름을 없앤다. 숏폼이 집중하는 힘을 조금씩 마모시켰다면, AI는 생각하는 힘을 빌려 쓰게 만든다. 두 기술이 연이어 아이가 혼자 버텨내야 하는 시간을 제거해 나가고 있다. 그 고독한 시간이야말로 뇌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소중한 시간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장 먼저 교정해야 할 것은 기기를 켜는 시점이 아니라 AI를 마주할 때 무엇을 얻어내려 하는가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태도'다. 오늘날 대다수 아이는 AI를 사유의 동반자가 아닌, 궁리에 막힐 때마다 정답을 인출하는 '지식 자동판매기'로 대하는 태도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판기 버튼을 누르기 전 스스로 고뇌하며 '생각의 동전'을 투입해야 할 고유한 시간을 통째로 삭제해 버린다. 결과물만 탐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스스로 풀어내려는 '과정 중심의 태도'를 회복할 때, 비로소 아이의 사고력이 자라날 토양이 마련된다.

사고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려면 AI에게 던지는 질문도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막혔을 때 곧장 결과값을 구걸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 지점'을 AI에게 명확히 선언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주체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단순히 "모르겠어"가 아니라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한 것인데, 이 지점부터 논리가 막혔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한계 선언'은 아이가 AI에게 사유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AI를 보조적인 파트너로 부리겠다는 태도를 증명하는 최소한의 방어선이 된다.

나아가 아이가 AI의 답변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 그 지식의 논리를 '파헤치고' '정복'하려는도전적인 태도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AI가 내놓은 매끄러운 결과물을 그대로 믿기보다, "이 정답이 나오기까지 AI는 어떤 근거들을 쌓아 올렸을까?"라며 그 논리의 발자취를 거꾸로 추적해 보는 대화를 나누는식이다. AI의 의견 중 허술한 빈틈을 찾아내 반박하는 '끝장 토론' 역시 훌륭한 방법이다. 아이가 AI의 생각을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논리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며 자기 논리를 세우려 할 때, 비로소 AI의안락함에 매몰되지 않고 기계를 다스리는 사유의 희열을 배울 수 있다.

숏폼이 아이의 집중력을 파고들어 장사를 했다면, 이제 AI는 아이의 사고력을 가로채며 수익을 올린다. 아이는 이 구조를 인식하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더 정교한 답을 얻을수록, 더 편리해질수록 무언가를잃고 있다는 감각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먼저 직시해야 할 사람은 부모다. AI가 아이의 생각을대신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이의 생각을 거들고 있는 지를 구분해내는 안목이 이 시대 부모에게 필요하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