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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봄이 이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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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봄이 이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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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이울고 있다 / 백승훈 시인
소공원 못가에 노랑꽃창포가 피었다. 노랑꽃창포는 이름과는 달리 창포와 무관한 붓꽃과에 속하는 유럽과 중동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진한 자색 꽃이 피는 자생종 꽃창포나 붓꽃과 달리 선명한 노란 꽃이 매혹적이다. 봄의 끝자락인 5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노랑꽃창포가 만개한 걸 보니 봄이 이울고 여름이 시작된 듯하다. 굳이 노랑꽃창포가 아니더라도 여름의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보라색 등꽃이 지기도 전에 산자락의 아까시나무 숲에선 벌써 꽃들이 만발해 아침저녁으로 달콤한 향기를 마을로 마구마구 내려보낸다. 둘레길을 걷다 벌들의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하얀 찔레꽃이 눈을 찔러 온다. 꽃들이 진 자리를 재빠르게 메우면서 초록 그늘이 점점 짙어져 간다. 마치 봄이 달음박질하며 달아나는 듯하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도 지났으니 여름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한낮엔 한여름의 더위가 느껴질 정도여서 지구 온난화로 여름이 한층 빨라진 듯해 조금은 씁쓸하다. 그런데도 숲의 초록 목숨들은 수선 피우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탓하는 법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그런 풀과 나무들이 사는 숲길을 걷다 보면 강원도 영월, 망경대 산자락에 사는 유승도 시인의 ‘자연의 손바닥’이란 시가 생각난다. “손오공이 날아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했나?// 부처는 날아봤자/ 자연의 손바닥 안이다// 너도나도/ 자연이란 몸의 세포 하나하나이니// 벗어나려 하지 않으며 산다.” -유승도의 ‘자연의 손바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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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이울고 있다 / 백승훈 시인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란 오만을 버리고 “너도나도 자연이란 몸의 세포 하나하나인”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세상은 숲속처럼 훨씬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다. 신록(新綠)은 나무에 새싹이 돋아나 숲이 전반적으로 연한 초록빛으로 물드는 현상으로, 숲이 봄의 중심에 들어선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일 년 중 숲이 가장 활기찬 생명력을 발휘하는 신록의 숲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생생한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생기 충만한 숲길을 걸으며 날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들과 눈인사를 건네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하다.

싱그러운 숲길을 걸으며 향기로 말을 걸어오는 꽃들에 눈길을 주다 보면 꽃이 지닌 색과 향의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매혹되곤 한다. 처음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화려한 색의 꽃이지만 걸음을 멈추고 그 꽃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꽃이 전하는 침묵의 메시지에 나를 돌아보게 된다.

화무십일홍으로 대변되는 단명한 꽃이지만 나는 그 고운 꽃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꽃만 보면 카메라를 들이대곤 한다. 날마다 꽃을 볼 때마다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시간 날 때마다 다시 펼쳐보곤 한다.

어제는 산책길에서 연분홍 메꽃을 보았는데 그 꽃을 보는 순간 나는 고향의 들녘이 그리워졌다. 어린 시절, 고향의 논둑길에서 늘 보았던 꽃이었기 때문이다. 산길에서 쪽동백꽃을 만났을 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고, 벌떼 잉잉거리는 찔레꽃을 보았을 땐 어린 시절 함께 찔레 순을 따 먹던 막내 누이가 보고 싶어졌다. 이처럼 어떤 꽃은 까맣게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트리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봄이 이울고 초록이 짙어져도 꽃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 나는 오늘도 초록의 숲을 걷는다. 가는 봄을 슬퍼하지 않는 까닭은 여름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숲엔 또 여름꽃들이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그 숲에서 꽃을 보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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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