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한명호 서양화가의 미술 에세이 ⑥ 그림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글로벌이코노믹

한명호 서양화가의 미술 에세이 ⑥ 그림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우조음. 만신은 소를 잡아 굿을 하고 나에게 머리와 고기를 보내주었어 나는 소를 위로하고 싶었고 소를 그렸지. 2018 이미지 확대보기
우조음. 만신은 소를 잡아 굿을 하고 나에게 머리와 고기를 보내주었어 나는 소를 위로하고 싶었고 소를 그렸지. 2018
엊그제, 몇 년 전 경주의 한 절로 내려보냈던 설송 큰스님의 경전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수십 년을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이곳저곳의 교회를 전전하며, 귀동냥으로 로고스를 찾아가던 나였으나, 당시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 질병을 극복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도움을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설송 큰스님이 주신 그 경전 덕이었다. 큰 병중에서야 나는 비로소 신의 뜻을 이해했고, 아내는 그런 내 머리맡에서 밤을 새워 불경을 써 내려갔다.

나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서 기도는 하였으나, 스스로 기복하지는 않았다. 아니 기복을 하는 자체를 경멸하고 살았다. 내가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옳은 일 앞에 스스로 머뭇거리기 싫어서였다. 그것이 내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고, 또 같은 이유로 붓을 끊고 살게도 했다.

그림을 그린다면서 생각을 하는 것, 화면을 연극이나 영화의 미쟝센처럼 완벽히 구성해낸다는 것은, 그 옛날 사혁(謝赫, 화가)의 육법 중 하나인 전이모사(轉移模寫), 즉 남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모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했던 것같이 우스꽝스럽다.
그림이 어째서 보는 사람을 만족시켜야 된단 말인가. 아직도 화가는 조선시대 도화서의 노예인가. 그림은 사실이며, 그리는 당장의 사건 현장이고, 순수하게 자신이 보기 위해 그려진다. 그러니 보는 사람은 그림을 볼 때, 작가의 그 순수한 에너지를 위해, 동서양 미술이 여태껏 추구해왔던 화법들은 모조리 내려놓아야만 된다.

그림은 최소한의 표현으로 나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18세기 추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독창적 연구 끝에 내놓았던 그 삐뚤빼뚤하고 자유로운 추사체의 전모는, 오늘날 화가에게도 똑같이 거리낌 없이 드러낼 자유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아직도 보는 사람을 위해 그려지고, 그리는 당사자를 위해선 아니다.

조선시대 문인화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최소한의 형태 속에 그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그린다고 하지 않고 친다고 했다. 그저 그린다는 표현만으론 도저히 족할 수 없던 때문이다. 그림으로 나를 담고, 붓으로 쳐내는 것으로 세상과 교감하고, 보는 이는 그 그림 속의 에너지 자체를 느끼며 공감하는 것이다. 위장된 장식으로서의 조형물과 그림이 아닌, 자기 자신을 담고 드러낼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미술이다.

해조음. 무거운 소리는 밑으로 가라앉고 맑고 가벼운 소리는 앞으로 나오는 거야 순서가 바뀌는 곳에는 혼란이 따라오나 아름다움이 탄생하기 전이라는 것이다. 2026이미지 확대보기
해조음. 무거운 소리는 밑으로 가라앉고 맑고 가벼운 소리는 앞으로 나오는 거야 순서가 바뀌는 곳에는 혼란이 따라오나 아름다움이 탄생하기 전이라는 것이다. 2026
계명성. 닭을 그리지 않아도 닭이 되는 것은 새벽별을 쫒아낸 고마움이다. 2026이미지 확대보기
계명성. 닭을 그리지 않아도 닭이 되는 것은 새벽별을 쫒아낸 고마움이다. 2026
전설. 부산의 이름 모를 콜렉터에게 가버린 오래전 사랑했던 친구. 2019이미지 확대보기
전설. 부산의 이름 모를 콜렉터에게 가버린 오래전 사랑했던 친구. 2019

내가 교회를 다닌 것은 사람이 기도 후에는 나쁜 짓을 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기도를 자주 하는 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용문산의 불덩이를 체험하고도 싶었고, 한얼산에서 축복도 받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소박한 개척교회 한구석에서 가끔씩 절절해지는 그 마음이 좋아서, 기도로서 일상이 좀 더 겸손해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신앙생활은 족한 것이라 생각한다.

가끔은 도올 선생이 보고 싶다. 어쩌다 그렇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세상의 비호감을 견뎌내시나 궁금하다. 버드나무집에서 식사하는 내내, 혹은 문수사 주지의 선방에서 우리는 서로 별말 없이도 같은 시간을 견뎠다. 그분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꼭 하고 싶은 말은 글로만 써내는 사람 같다. ‘하이브리드 아티스트’라고 비꼬는 나의 말에도 ‘그렇게 심한 말을..’하고 입을 다무는, 사석에선 그다지도 말이 짧은 분이다.

요즘 얼핏 스쳐 들은 종교에 대한 그의 절묘한 해답 들은 가히 깨달음의 경지다. ‘2000년 전 그때 사건은 있었고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때 그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주는가.

그 중심은 놓치고 사람만 붙들고 종교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작품은 없고, 브랜드화된 작가들의 상품만 남아도는 게 작금 미술계의 현실이다. 개인의 작품은 제대로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냥 쓰레기가 된다.

그림이 어려워도 그 안의 기운생동을 읽어내는 감상자들이 있어야만, 그림은 그림으로서의 가치가 된다. 상품이 난무하고, 작품은 부재한 이 세상에서, 간혹 만나는 진한 감동을 위해 사람들은 미술관을 찾는 것이다.

한명호(서양화가)이미지 확대보기
한명호(서양화가)

글쓴이/ 한명호(1957년생)/ 홍익대 서양화과 및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박영덕화랑. 박여숙화랑. 현대아트갤러리. 갤러리Q, 부산화랑 등 다수), 단체전 및 국제전(화랑미술제-현대화랑, 북경아트페어-아트사이드갤러리 등), 최우수예술가상 미술부문 수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저서 ‘보이지 않는 곳을 보는 화가’ 등 다수


한명호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