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그런데 지금, 수십 년간 해외 영토를 누비며 달콤한 이자를 챙겨 먹던 와타나베 부인들이 짐을 싸서 도쿄로 돌아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겠다고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저금리의 상징이었던 일본 열도에 금리 인상의 불길이 번지는 순간, 전 세계 주식과 부동산, 가상자산 시장을 지탱하던 자금이 한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엔캐리 청산 폭탄'의 공포가 다시 시작되었다.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라는 말은 거창해 보이지만, 원리는 동네 장사보다 단순하다.옆집 철수네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도 이자를 단 0.1%만 받는다. 사실상 공짜로 돈을 빌려주는 셈이다. 반면 길 건너 영희네 은행에 돈을 맡기면 매년 5%의 이자를 따박따박 얹어준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철수네 은행에서 수억 원을 빌려와 영희네 은행에 몽땅 집어넣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매년 4.9%의 이자 차익을 공짜로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엔캐리 트레이드의 본질이다.
일본의 은행에서 연 0~0.1%대의 헐값 이자로 엔화를 잔뜩 빌린다.이 엔화를 달러로 바꾼다. 이 돈을 미국으로 보내 5%대 금리를 주는 미국 국채를 사거나, 테슬라·애플·엔비디아 같은 화끈한 나스닥 성장주를 사들인다. 여기에 마법이 하나 더 붙는다. 그동안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졌기(엔저) 때문이다. 1달러에 100엔 하던 환율이 160엔으로 올라가면, 나중에 달러를 팔아 일본 빚을 갚을 때 갚아야 할 원금 부담이 저절로 쪼그라든다. 이자 차익에 환차익까지 얹어지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합법적 돈 복사기'였던 셈이다.
도대체 일본의 평범한 주부들이 어쩌다 이런 거대한 글로벌 머니게임의 주역이 되었을까? 그 출발점은 1990년대 초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라는 비극이었다. 도쿄 땅을 다 팔면 미국 전체 땅을 살 수 있다던 광란의 거품이 꺼진 뒤, 일본 경제는 기나긴 '잃어버린 30년'의 늪에 빠졌다. 물가도 안 오르고 월급도 안 오르는 지독한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자, 일본은행은 극약 처방으로 금리를 '0%'로 떨어뜨렸다. 그때 일본 가정의 살림을 도맡던 주부들은 벼락을 맞았다. 은행에 1억 엔(약 9억 원)이라는 거금을 1년 내내 얌전히 넣어둬도, 붙는 이자가 고작 1만 엔(약 9만 원) 남짓에 불과했다. ATM 수수료 몇 번 뽑아 쓰면 원금이 깎여나가는 지경이었다.
"은행 예금만 믿다가는 굶어 죽겠다." 생존의 위기에 몰린 주부들이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것이 1990년대 후반 외신들이 경악하며 이름 붙인 '와타나베 부인의 탄생'이다.이들은 낮은 금리의 엔화를 담보로 삼아 연 7~10%의 고금리를 주던 호주 달러, 뉴질랜드 달러, 멕시코 페소, 브라질 헤알화 채권에 거침없이 베팅했다.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계좌에 고금리 외화 이자가 뚝뚝 떨어지는 'FX 마진거래'의 재미에 눈을 뜬 것이다.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와타나베 부인 군단이 움직이는 자금은 일본 전체 외환거래의 절반을 차지했고, 웬만한 글로벌 헤지펀드 몇 개를 합친 것보다 덩치가 커졌다.
시간이 흘러 오늘날에는 이들의 아들딸인 2030 청년들까지 가세해 가상자산과 미국 빅테크 주식에 엔화를 지렛대 삼아 베팅하는 'MZ 와타나베'로 진화했다. 아무리 덩치가 커졌어도 이들의 약점은 명확하다. 자기 돈만 가지고 하는 투자가 아니라 엄청난 빚(레버리지)을 끼고 하는 거래이기 때문에, 일본 금리가 오르고 엔화가 급등하는 신호가 뜨면 마진콜(증거금 부족 통보)을 맞고 가장 먼저 비명을 지르며 패닉 셀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설마 금리 찔끔 올린다고 지구가 무너지겠어?" 이 순진한 믿음이 완벽하게 박살 난 날이 바로 2024년 8월 5일 월요일이었다. 발단은 사소해 보였다. 2024년 7월 말, 일본은행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기준금리를 0.1%에서 0.25%로 살짝 올렸다. 고작 0.15%포인트 인상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미국의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나쁘게 나오며 "미국도 이제 금리를 대폭 내리겠구나" 하는 공포가 겹쳤다.
저녁이 되자 나스닥 시장이 열렸고, 세계 최강의 주식이라던 엔비디아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가 쓰나미를 맞은 듯 쓸려 내려갔다. 비트코인도 단숨에 20% 가까이 곤두박질쳤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불태운 이 거대한 불기둥의 진원지가 바로 '엔캐리 청산'이었다. 일본은행이 헛기침 한 번 하고 금리를 0.15%포인트 올렸을 뿐인데,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수천조 원의 돈이 비명과 함께 증발해 버린 것이다. 당시 시장에 풀린 엔캐리 자금 중 고작 30~40%가 청산되었을 뿐인데도 세계 경제는 심장마비 직전까지 내몰렸다.
여기서 기가 막힌 미스터리가 하나 등장한다.엔캐리 청산이 터지면 미국 주식도 폭락하고 전 세계가 난리가 난다는 것을 월가의 영웅이자 백전노장인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이 모를 리 없다. 그는 악명 높은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출신으로, 통화 전쟁과 외환 투기의 산증인이자 환율의 생리를 뼈속까지 꿰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베센트 장관은 왜 일본 정부를 향해 "엔화 가치 방어 쇼 그만하고, 당장 기준금리 팍팍 올려라!"라며 거칠게 군기반장을 자처하고 나선 것일까? 불장난을 하면 집이 탈 줄 알면서도 불을 지피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이 기괴한 역설의 뒤에는 미국의 절체절명의 국익과 잔인한 계산서가 숨겨져 있다. 첫째, "미국 국채를 그만 팔아치우라"는 엄포다. 미국 정부는 지금 천문학적인 빚을 내어 나라를 굴리고 있다. 국채를 시장에 산더미처럼 내다 팔아야 하는데, 사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들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추락하는 엔화 가치를 방어하겠답시고 시장에 달러를 마구 쏟아부었다. 그 달러를 어디서 구했을까? 금고에 고이 모셔둔 '미국 국채'를 시장에 대량으로 내다 팔아 달러를 마련했던 것이다.
일본이 미 국채를 와장창 던지니 미국의 국채 가격은 똥값이 되고, 반대로 미국의 국채 금리는 하늘로 치솟는다.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5%를 뚫고 올라가면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 9%로 치솟아 미국 가계와 기업이 먼저 파산하게 된다. 베센트의 속내는 명확하다. "엔화 방어한답시고 뒤에서 내 국채 내다 팔아 미국 금리 올리지 마라! 꼼수 부리지 말고 일본 네 놈들이 직접 금리를 올려서 엔화 가치를 정상화해라!"라는 거친 경고인 셈이다.
둘째, "강달러 때문에 미국 제조업 다 죽는다"는 아우성이다. 엔화가 지나치게 싸구려가 되니,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만 날개를 달았다. 미국 공장을 다시 살리고 제조업 르네상스를 이루겠다는 워싱턴의 구상은 초약세 엔화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있었다. 베센트의 눈에 일본의 기형적인 초저금리는 무역적자를 유발하는 일종의 '얌체 환율 조작'으로 비친 것이다.
셋째, "인플레이션 불을 혼자 끌 수 없다"는 현실론이다. 미국 연준이 아무리 금리를 높게 유지하며 전 세계 유동성을 틀어막아 물가를 잡으려 해도, 일본이 뒤에서 마이너스·제로금리로 글로벌 유동성의 수도꼭지를 콸콸 틀어놓고 있으니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일본의 수도꼭지를 강제로 잠가야 비로소 글로벌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결국 베센트 장관은 엔캐리 청산으로 인한 단기적인 주식시장 발작이라는 작은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미국의 장기 국채금리 안정과 달러 패권 유지라는 거대한 몸통을 지키기 위해 일본의 팔을 강하게 비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국의 강력한 압박과 일본 내부의 물가 상승 압력 속에서,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외통수'다. 시간의 문제일 뿐, 일본의 금리는 계단을 밟듯 올라갈 것이고 미-일 간의 금리 격차는 좁혀질 수밖에 없다.엔캐리 청산의 파도는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2024년의 쇼크가 일종의 '1차 지진'이었다면, 앞으로 닥쳐올 국면은 바다 밑바닥의 거대한 지각 변동이 밀어 올리는 '진짜 쓰나미'일 수 있다. 여전히 세계 시장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수조 달러 규모의 엔화 차입 레버리지가 완전히 해체되기 전까지 글로벌 자산시장은 시한폭탄을 품고 달리는 형국이다. 와타나베 부인이 짐을 싸고, 도쿄의 금리 빗장이 풀리는 순간은 전 세계 공짜 돈의 시대가 완전히 종말을 고하게된다. 와타나베부인은 파티는 끝나가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