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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제본스 역설...인공지능 AI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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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제본스 역설...인공지능 AI의 몰락?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제본스의 역설과 역사의 교훈

1865년 영국, 대영제국 전역의 탄광촌에는 짙은 패배감과 공포가 감돌고 있었다. 기술자 제임스 와트가 개발한 개량형 증기기관이 산업 현장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 새로운 증기기관은 과거의 기계에 비해 석탄을 고작 4분의 1밖에 쓰지 않는 괴물 같은 물건이었다. 당시 신문과 학자들, 그리고 탄광 소유주들은 머리를 싸매고 탄식했다.

"석탄을 4분의 1만 먹는 기계가 나왔으니, 이제 석탄 수요는 4분의 1 토막이 날 것이다. 채굴해 봐야 팔리지도 않을 테니 영국의 탄광업자들은 모조리 줄파산하고 석탄 산업은 완전히 망할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계산이었다. 100을 쓰던 기계가 25만 쓰게 되었으니 시장이 쪼그라들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산술적 결론이었다. 탄광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했고, 자본가들은 석탄 관련 투자를 거두어들여야 한다며 아우성을 쳤다.

바로 그때, 서른 살의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가 홀로 단상에 올라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폭탄선언을 던졌다. "당신들의 계산은 완전히 틀렸다. 석탄을 적게 먹는 고효율 기계가 나오면 석탄업자가 망하는 것이 아니다. 석탄을 때는 비용이 껌값처럼 싸지기 때문에 온 나라가 너도나도 증기기관을 들여놓을 것이다. 결국 석탄업자는 망하기는커녕 역사상 가장 많은 석탄을 팔아 유례없는 떼돈을 벌게 될 것이다."
세상은 그를 미치광이 취급했으나, 결과는 소름 돋을 정도로 제본스의 말이 맞았다. 석탄을 적게 먹어 운영비가 헐값이 되자, 그동안 비싸서 엄두도 못 내던 방직 공장, 제철소, 기선, 철도 회사들이 앞다투어 증기기관을 사들였다. 1대 돌아가던 자리에 100대의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석탄 효율이 4배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전체 석탄 소비량은 수십 배로 폭증했다. 망할 줄 알았던 탄광업자들은 대호황을 맞아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누렸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역설,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의 진짜 출발점이다. 핵심은 명쾌하다. "기술 혁신으로 효율이 좋아지면 공급업자가 망한다는 걱정은 완벽한 헛소리다"라는 교훈이다. 160년이 흐른 오늘날, 글로벌 금융시장과 여의도 증권가에서 이 똑같은 헛소동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토큰값이 헐값이니 반도체 다 망한다?

지금 인공지능(AI) 시장을 뒤흔드는 최대 화두는 '토큰(AI의 글자 연산 단위) 가격의 폭락'이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 두뇌를 한 번 빌려 쓰는 데 수만 원이 들었다. 그런데 오픈소스 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100만 토큰당 단가가 몇백 원, 몇십 원 수준으로 처박히고 있다. 심지어 거의 공짜에 가까운 모델까지 등장했다.그러자 월가의 비관론자들과 국내외 언론들이 1865년 영국의 탄광업자들과 똑같은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AI 쓰는 가격이 저렇게 헐값이 되면 오픈AI 같은 모델 회사들은 뭘 남겨 먹고 사나?" "토큰 단가가 무너졌으니, 엔비디아 GPU나 SK하이닉스 HBM 같은 비싼 AI 반도체는 이제 안 팔릴 것이다." "인프라에 수십조 원을 쏟아부은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해졌으니 AI 버블은 곧 터지고 관련 기업들은 모조리 폭망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그럴듯한 비관론이다. 판매 단가가 떨어졌으니 공급자들의 마진이 박살 나고 망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 주장은 그러나 제본스의 역설 앞에서 완전히 무너진다. 160년 전 "석탄 적게 쓰는 증기기관 나왔으니 탄광업자 다 굶어 죽는다"며 벌벌 떨던 영국인들의 지적 수준과 정확히 같은 오류에 빠져 있는 셈이다. 역사가 가르쳐준 진실은 정반대다. 토큰 가격이 싸졌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토큰 가격이 싸졌기 때문에 이제부터 진짜 거대한 소비의 폭발이 시작되는 것이다.

휴대전화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이해를 돕기 위해 거창한 이론 대신 휴대전화 요금 이야기를 꺼내보자.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반, 폴더폰을 쓰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 화면 가운데 박혀 있던 무선 인터넷 버튼(NATE, magicⓝ 등)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그 버튼이 잘못 눌리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사색이 된 얼굴로 취소 버튼을 미친 듯이 연타했다. 데이터 1메가바이트(MB)를 쓰는 데 몇백 원, 몇천 원씩 폭탄 요금이 청구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사람들은 통신 데이터를 극도로 아껴 썼다. 텍스트 몇 줄 내려받는 것도 손을 떨며 망설였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 "앞으로 데이터 1MB 가격이 0원에 가깝게 헐값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했겠는가? 십중팔구 "그렇게 통신 단가가 떨어지면 SK텔레콤이나 KT 같은 통신사들은 모조리 파산하겠구나"라고 걱정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통신망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광통신과 4G, 5G가 깔렸고, 데이터 단가는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는 '무제한 요금제' 시대로 진입했다. 통신사가 망했는가? 데이터 장비 회사가 문을 닫았는가? 정반대였다. 데이터 가격이 껌값이 되자 사람들은 데이터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펑펑 쓰기 시작했다.

텍스트 몇 줄 보던 화면에서 초고화질 4K 동영상을 쉼 없이 스트리밍하고, 넷플릭스를 몰아보고, 유튜브와 틱톡 영상을 온종일 켜놓는다. 데이터 단가는 수천 분의 일로 폭락했지만, 인류가 소비하는 총 데이터의 양은 수백만 배로 폭증했다. 그 결과 데이터센터를 짓고, 통신 장비를 팔고, 기지국을 세우는 전체 인프라 시장의 파이는 과거 문자 메시지 한 건당 30원씩 받던 시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단가가 파격적으로 싸졌기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싸졌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시장이 열린 것이다.

토큰 소비가 1만 배 폭증하는 이유

지금 AI 비관론자들이 "토큰값이 싸져서 망한다"고 헛발질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의 머릿속에 든 AI의 모습이 고작 '챗GPT 창에 질문 몇 개 던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오늘 서울 날씨 어때?", "이 영문 이메일 좀 번역해줘." 이런 단순 질문을 던지면 AI는 기껏해야 수백 개, 많아야 1,000개 안팎의 토큰을 쓴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생 이런 식의 단순 질문만 던진다면 비관론자들의 말이 맞다. 하루에 열 개 질문하던 사람이 토큰값이 싸졌다고 갑자기 천 개씩 질문을 타이핑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니 "단가가 10분의 1로 떨어졌으니 매출도 10분의 1 토막 나겠구나"라는 유치한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본류는 이미 단순 질문 놀이를 끝내고 '자율형 비서(Agentic AI)'라는 거대한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

자율 비서는 사람이 일일이 키보드를 두드려가며 말을 걸 필요가 없다. "이번 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악재와 호재를 모조리 분석해서 30장짜리 파워포인트 보고서와 엑셀 분석표를 내일 아침까지 만들어놔"라는 명령 딱 한 줄만 던져 놓으면 끝난다.
그러면 AI는 사람이 잠든 밤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미친 듯이 일하기 시작한다.

전 세계 증권사 리포트와 뉴스 수천 편을 스스로 긁어모아 정독한다. 보고서 초안을 쓰고, 스스로 논리적 오류를 검토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지우고 다시 쓴다. 파이썬 코드를 스스로 짜서 데이터를 그래프로 변환해 보고, 에러가 나면 수십 번 코드를 고쳐가며 재실행한다. 기획자 AI, 데이터 분석 AI, 디자인 검수 AI 등 가상의 AI 비서 여럿이 지들끼리 쉼 없이 회의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이 과정에서 사람이 보지 않는 백그라운드 연산, 즉 '생각의 토큰'이 무려 수천만 개씩 쉬지 않고 소모된다.

단순 챗봇이 답변 하나 뱉을 때 1,000토큰을 썼다면, 밤새 혼자 일하는 자율 비서는 작업 한 번에 1,000만 토큰을 집어삼킨다. AI 한 번 굴리는 데 들어가는 연산 소비량이 단숨에 1만 배로 껑충 뛰는 것이다. 여기서 제본스의 역설을 다시 대입해 보자. 과거처럼 토큰 가격이 비싸다면 그 어떤 기업이 이런 자율 비서를 쓸 수 있겠는가? 보고서 한 건 뽑는 데 연산 비용만 수백만 원이 청구된다면 당장 전원을 꺼버릴 것이다. 오직 토큰 가격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서 껌값이 되어야만, 전 세계 모든 회사와 직장인들이 자신만의 전속 AI 비서를 컴퓨터에 24시간 띄워놓고 쉼 없이 굴릴 수 있게 된다.

산수를 해보자. 매출 = 판매 단가 × 사용량이다. 단가가 10분의 1로 떨어졌다 한들, 사용하는 양이 1,000배, 1만 배로 폭증하면 전체 시장의 매출 파이는 100배, 1,000배로 팽창한다. 토큰 단가의 하락은 시장의 파멸이 아니다. 자율 비서라는 거대한 괴물을 깨워 전 세계가 AI를 물 쓰듯 펑펑 쓰게 만드는 절대적인 기폭제인 셈이다.

역사 속 승자들의 법칙

160년 전 영국의 석탄 대소동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교훈을 얻어야 한다. "효율 좋은 증기기관이 나와서 석탄 소비가 폭발했을 때, 진짜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돈을 긁어모은 승자는 누구였는가?" 증기기관을 단순히 사다가 남에게 빌려주던 어설픈 중간 장사꾼들이 아니었다. 바로 '땅속에서 석탄을 캐내던 탄광업자'와 '기계를 만들 철을 공급하던 제철소'였다. 기계가 온 나라에 깔리고 24시간 돌아가기 시작하자, 결국 그 기계의 배를 채워줄 원자재를 독점한 자들이 시장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이 역사적 방정식은 지금의 AI 생태계에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토큰 가격이 헐값이 되어 전 세계 수천만 개 기업과 수억 명의 인류가 자율 AI를 밤낮없이 돌려대기 시작하면, 가장 목이 마르고 피가 마르는 곳이 어디겠는가. 바로 그 천문학적인 연산을 실시간으로 감당해야 하는 최하단의 하드웨어 인프라 기업들이다. AI 반도체(GPU)와 초고대역폭메모리(HBM) 진영이 가장 큰 혜택을 본다. 토큰 가격이 싸져서 연산 수요가 수만 배 폭증하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서버는 과부하로 불타오르게 된다.

모델이 가벼워지고 효율화되었다고 해서 반도체를 덜 사는 것이 아니다. 폭증하는 전 세계의 쿼리(질문)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위해 빅테크 기업들은 더 많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를 사들여야 하고, 그 두뇌 옆에 필수적으로 붙어야 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HBM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 효율이 좋아져서 사용량이 폭증할수록 원천 연산 능력을 독점한 반도체 기업들의 공장은 24시간 풀가동으로도 모자라게 된다. 제본스의 역설이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수혜자다.

전력망과 에너지 인프라 기업에도 큰 기회가 생긴다. 160년 전 증기기관의 종착역이 석탄 채굴량이었듯, 21세기 AI 혁명의 최종 종착역은 바로 '전기'다. 컴퓨터 연산은 공짜 바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토큰 하나하나는 전부 데이터센터가 먹어 치우는 전력의 결과물이다. 토큰 단가가 싸져서 전 세계의 토큰 소비량이 1만 배 폭증한다는 것은, 그 뒤편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와 변압기, 송배전망,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가 감당해야 할 전기 소모량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한다는 뜻이다.
석탄을 덜 먹는 기계가 나와서 역사상 가장 많은 석탄을 태웠듯이, 고효율 AI 모델이 나와서 역사상 가장 막대한 전력을 집어삼키는 기막힌 역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역사는 무지한 자들의 공포를 비웃으며 언제나 같은 궤적으로 전진해 왔다. 1865년 제본스는 "자원을 아끼는 고효율 기술이 나오면 공급업자가 망한다"는 대영제국의 집단 최면을 통쾌하게 깨부수었다. 효율의 혁신은 언제나 가격을 낮추고, 낮아진 가격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대폭발의 수요를 불러왔다.

지금 AI 토큰 가격이 급락하는 것을 보며 "AI 버블이 꺼졌다", "반도체 공급업체들 다 망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은 역사의 제1법칙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비싼 기술은 일부 부유층의 사치품에 머물지만, 싸구려가 된 기술은 온 세상을 집어삼키는 문명이 된다. 스마트폰 데이터 요금이 공짜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모바일 혁명이 완성되었듯, AI 토큰 가격이 바닥으로 처박히고 있기에 비로소 인류의 모든 공장과 사무실이 AI라는 거대한 엔진 위로 올라타기 시작한 것이다.

단기적인 단가 하락에 속아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칠 상황이 아니다. 160년 전 석탄업자들이 마주했던 그 찬란한 소비의 대폭발이, 지금 AI 반도체와 에너지 인프라 시장에서 막 거대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효율의 혁신은 언제나 시장의 거대한 팽창으로 끝이 난다는 것, 이것이 제본스의 역설이 21세기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하고 준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