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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달리자-4] 경마 세계화 족적남긴 부산경남 경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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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달리자-4] 경마 세계화 족적남긴 부산경남 경마장

1996년 부산 아시안게임 승미징 건설 놓고 부산시‧경남도 갈등
양 지역 경계에 짓기로 합의, 이름도 '부산경남 경마장'으로 명명
외국인 선수‧감독 참여해 한국 경마의 국제화 시대 선구자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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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마사회
경마장 이름이 ‘부산’도 아니고 ‘경남’도 아닌 것이, 다소 애매하고 어정쩡하다.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995년 8월 부산시는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건설할 승마경기장을 사후 경마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안(案)을 정부 측에 건의했고, 이 소식을 들은 경상남도는 발끈해 이견을 제기하고 나섰다.
거둬들일 레저세가 워낙 거액인 사업이다 보니 매년 빈약한 재정으로 악전고투를 치러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들 입장에서는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결국 부산시와 경상남도의 경계에 미래 경마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2001년 8월 첫 삽을 떠 1년여의 공사 끝에 완성한 2002년 아시안게임의 전용 경기장으로 승마경기를 치러냈다. 이후 경마장 활용을 위한 보강공사 과정을 거쳐 2005년 9월 30일, ‘부산경남경마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사정이 이러니 이 경마장은 주소가 둘이었다. 한편은 경남 김해시 장유면 수가리 810의 1번지에 자리 잡고 있었고, 다른 한편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152번지를 소재지로 했다.

하야리아 제3 서면경마장 그 후. ‘부산에 경마장을 허하라’는 움직임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꽤 구체적인 논의가 오간 건 1980년대 말부터였다. 당시 부산시가 해상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며 경마장 설치를 그 계획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섬에 경마장을 설치하는 방안은 곧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말과 새의 생물학적 친근함을 설파하는 한국마사회 측 논리도 소용없었다. 결국 합의점에 이르지 못한 채 ‘부산’에서 ‘경주’로 방향을 돌려야 했고, 경주시 측은 보문단지 내 토지를 수용해 부지로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땅 밑에 묻혀 있던 선조들의 유산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시굴조사 실시 당시, 땅을 팔 때마다 기왓장과 옛 생활도구가 건져 올려졌다.

결국 경주경마장 건설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백지화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장은 ‘롤모델 경마장’을 목표로 했다. 국제 수준에 뒤지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고 대한민국 경마 세계화의 선두에 나섰다. 그 첫걸음은 해외 베테랑 기수 영입정책이었다. 아직 경마 인력풀이 충분치 못한 시절이다 보니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박양수 당시 한국마사회 국제협력팀장은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서울경마공원만 해도 기승횟수가 1,000회를 넘어가는 베테랑 기수들이 절반을 넘어가고 있는 데다 우승횟수가 400회 이상인 우수한 기수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부산은 기승 경험이 다소 부족한 기수들이 많아 기승술을 전수하고 경주 운영을 원활하게 할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기수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해외기수를 영입하게 된 것입니다.”

2005년 10월 28일, 최초로 벽안(碧眼)의 기수들이 우리 경마장 주로를 내달렸다 .

경마 선진국인 호주에서도 뛰어난 경마 수준을 보이는 뉴사우스웨일스와 퀸즐랜드 출신의 기수들이었다. 홍콩과 마카오 등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들 3인의18 기수는, 영입 이후 국내 기수들에게 기승술 향상을 위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으며 과도기에 있던 부산경남경마장 인력들의 수준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자료=한국마사회
자료=한국마사회
한국경마에도 외국인 감독 시대가 열린 건 2007년이었다. 이해에 한국마사회는 호주와 중국, 두바이 등을 거치며 조교사로서 실력을 다져 온 45세의 피터 마이클 울즐리에게 조교사 면허를 발급했다. 그는 부산경남경마장에서 데뷔를 가지며 ‘국내 최초’ 외국인 조교사의 타이틀을 달게 되었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며 국내 경마의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 그 결과 2021년 9월에는 소속 경주마 ‘르콩코드’의 우승과 함께 개인 통산 600승을 달성했다.

2010년에는 외국인 1호 트랙라이더가 등장했다.

‘트랙라이더(Trackrider)’킄 경주마의 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말관리사를 말한다. 주 업무는 경주마 훈련이지만, 훈련은 물론 기본적 건강관리와 응급처치도 담당한다.

남아공 출신의 응고지 더즐링 웰링턴이 주인공으로, 국내 활동 개시 이후 12년간 백광열 조교사와 호흡을 맞췄다. 정년퇴직 전까지 숱한 명마 탄생에 일조하며 국내 경마계의 또 다른 ‘레전드’로 등극했다. 이처럼 뚜렷한 성공사례에 힘입어 외국인 트랙라이더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고, 그 결과 2022년에는 부산경남경마장에만 30명에 달하는 벽안의 말 훈련 전문가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문위원도 외국인을 지속적으로 영입했다. 2008년 부산경남경마장 최초로 심판전문위원을 채용한 데 이어, 2011년에는 외국인 핸디캐퍼를 채용했다.

핸디캐퍼, 즉 ‘핸디캡(Handicap) 전문위원’의 업무는 경기의 박진감과 흥미를 위해 경주마 능력의 서열에 따라 지니고 달리게 할 부담 중량을 부여하는 것이다. 기량이 좋은 말이 매번 우승하게 되면 경주의 흥미가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일정한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중량을 더하고 덞으로써 조건을 걸어 경주를 시행한다.

한국마사회는 국제적으로 능력이 검증된, 경주마 능력판단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외국인 기수나 조교사에 비해 외국인 핸디 캐퍼의 안착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경마 종주국인 영국 출신의 전문위원을 채용했으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계약기간 중 고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2013년 두 번째 모집을 통해 선발된 인력은 적응에 성공하며, 경마 시행의 핵심 분야인 핸디캡 업무의 선진화를 주도했다.

이처럼 기수에 이어 조교사, 심판전문위원, 트랙라이더, 핸디캡 전문위원까지 외국인력 도입의 문호를 넓히며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은 한국경마의 국제화를 주도하는 경마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자료=한국마사회 ‘한국 경마 100년사’>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