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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세운 AI칩 제국,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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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세운 AI칩 제국,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

엔비디아 로고. 사진=로이터
엔비디아 로고. 사진=로이터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엔비디아만큼 잘나가는 기업을 찾기 힘들다. 반년 만에 주가가 200% 이상 상승해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한 데 이어, 주가 500달러도 코앞에 둔 상황이다.
AI 시장이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어 엔비디아의 AI 칩은 주력 제품인 A100은 물론, 차세대 신제품 H100마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골드만삭스나 키뱅크 등 투자 은행들도 잇달아 엔비디아의 목표 주가를 600달러, 700달러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

다만, 엔비디아가 세운 AI칩 제국의 앞날이 탄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의 칩 공급 문제와 AI 업계의 동향은 물론, 국제 정세까지 장기적으로 엔비디아에 불리한 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칩 공급 문제, 엔비디아 성장 발목 잡아


현재 엔비디아의 AI칩 공급 문제는 심상치 않다. 한 번 주문하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내년 물량까지 이미 선주문이 끝난 상태다. 바꿔 말하면 AI칩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내년까지 ‘개점휴업’이다.

최근 엔비디아는 H100 칩의 출하량을 내년까지 지금의 3배인 150만~200만 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엔비디아 AI 칩을 생산하는 TSMC의 생산 용량은 이미 한계다. 부족한 물량 공급을 늘리기 위한 신규 공장도 최소한 1년 이후에나 완공될 예정이다.

게다가, 품귀현상이 심해지면서 가뜩이나 고가인 엔비디아 AI 칩은 웃돈까지 붙어 거래되면서 AI 관련 기업들의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

AMD와 인텔 등 경쟁사들도 그 빈틈을 노리고 있다. 성능은 다소 부족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빠른 리드타임(주문 후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을 내세워 갈길 바쁜 AI 기업들을 상대로 점유율을 높이는 중이다. 특히 H100 칩의 3분의 1 가격에, 약 90%의 AI 성능을 제공하는 ‘가우디2’를 앞세운 인텔의 추격이 매섭다.

주춤한 AI 시장, ‘자체 AI칩’ 내세우는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중


최근 AI 스타트업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생성형 AI 붐을 일으킨 ‘챗GPT’는 물론 △AI 이미지 생성 도구 ‘미드저니’ △텍스트 기반 비디오 생성 서비스 ‘신디시아’ △AI 원고 작성 도구 ‘재스퍼’ 등의 AI 스타트업들이 2분기 이후 이용자 수가 감소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8월(이하 현지시간) WSJ는 “일부 AI 스타트업은 사용자들의 관심이 줄면서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다”라며 “투자자들도 새로운 AI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생성형 AI 분야가 주목받고 있지만, 제대로 된 사업모델을 만들지 못하면 또 하나의 버블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AI칩의 주요 고객층인 AI 스타트업이 위축되면서 시장의 바통은 막대한 자본과 대규모 클라우드 플랫폼, 다양한 사업 모델을 갖춘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들은 엔비디아 AI 칩의 주요 고객이지만, 한편으로 최대 경쟁자다. 구글은 지난 2016년부터 텐서 프로세싱 유닛(TPU)이라는 맞춤형 AI 칩을 개발해 자사 데이터센터에 적용하고 있다. 아마존도 최근 자체 개발한 AI칩 ‘인퍼런시아’와 ‘트레이니움’ 등을 이용해 생성형 AI의 핵심인 대규모 언어 모델(LLM) 학습에 나섰다.

MS도 2019년부터 개발 중인 AI칩 ‘아테나’를 이르면 내년 초 출시할 계획이다. ‘비용 절감’을 내세우며 빅테크 기업들이 점차 자체 AI칩 비중을 늘릴수록, 엔비디아 AI칩의 수요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발등의 불로 떨어진 EU의 ‘반독점 위반’ 조사


당장 엔비디아에게 가장 큰 위협으로 떠오른 것은 갑작스러운 유럽연합(EU)의 반독점 위반 조사다. 지난 9월 29일 블룸버그는 EU 집행위원회가 AI용 반도체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대해 반경쟁적 남용 혐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현재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약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반독점 혐의를 피하는 게 쉽지 않다. 엔비디아가 EU의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독점 관행을 변경하라는 명령과 더불어 글로벌 연간 수익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게 된다.

벌금도 벌금이지만, ‘독점 기업’이란 딱지는 엔비디아가 최대한 피하고 싶은 낙인이다. 본진인 미국에서도 반독점 여부를 따질 경우, EU의 판단이 아무래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에서는 검색엔진 분야에서 연방정부로부터 반독점 소송을 당한 구글이 한창 재판을 진행 중이다. 자국 기업이라고 봐주지 않는 미국의 특성상, 엔비디아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반독점 기업으로 찍히면 ‘독점 기업 분할 명령’에 따라 AI 반도체 관련 사업부를 강제로 분사해 내보내야 한다. 현재 AI 반도체에 ‘올인’하고 있는 엔비디아 입장에서 기업 자체의 존폐 위기인 셈이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