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도는 황홀하고 황홀하다

글로벌이코노믹

[정경대 박사의 인문학] 도는 황홀하고 황홀하다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21장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
노자는 도를 황홀(恍惚)이라 형용했다. 황홀은 환상적인 모양이나 어떤 현상을 표현한 말이다. 극도로 아름답거나 사랑이 지극해졌을 때와 같은, 도무지 형용할 만한 언어가 없을 때의 감정을 황홀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황홀은 명상 중에 절대 무아에 들었을 때 마음의 눈에 비춰 보이는 도의 세계다.

명상으로 삼매에 들어 도의 세계를 경험한 이들에 따르면 그 빛깔이 밝지도 어둡지도 않으면서 은은한 황금빛이라 했다. 그래서 붓다의 몸에 황금빛 옷을 입히는 것일까? 하여튼 깨달음을 얻은 이들의 공통된 도의 색깔이 황홀한 황금색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노자는 그 황홀한 황금빛 중에 만물의 상(象)이 있다고 했다. 상이란 존재는 하되 상상으로 그려볼 수 있는 물질 모양을 이른다. 그리고 물질의 질(質)은 상의 정기로서 보편적이면서도 매우 심오한 철학 성이 있다. 노자는 황홀경에 존재하는 상의 질량이 도탑게 보전돼 있으며, 텅 빈 구멍에서 나온 덕을 용납하는 것만이 오직 도를 따를 뿐이라 했다.

텅 빈 구멍은 덕의 신령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곡신을 이른다. 곡신으로부터 나오는 덕은 도에 의한 도의 신령한 기운으로서 도만을 따른다고 한 것이다. 덕은 베풂이다. 만물을 낳아주고 길러주는 신령한 기운이 덕이며, 그 덕은 정기에서 비롯되어 만물을 낳고 길러주는 덕을 베푼다. 따라서 덕을 용납하고 수용하는 것도 도이고, 그 작용 역시 도만을 좇는다.
이렇게 도에서 태어나 덕을 입는 것은 도의 정기가 만물의 질적 성분과 성질이며, 그것이 만물의 정기에서 비롯된 소립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도의 작용으로 소립자가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진 것이 하늘이요, 땅이며, 자연이다. 노자는 이러한 이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라는 물건은 오직 황홀하고 황홀한데 황홀하고 황홀한 그중에 만물의 모습인 상이 있고, 황홀하고 황홀한 그중에 만물의 원기인 정이 있으며, 그 정기는 진실하고 진실하여 믿음이 보존돼 있어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象精)이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살펴본 그 모든 만물을 내가 무엇이라 하겠는가? 모든 것을 깨달아 보니 자연히 그와 같음을 알 수 있었다.

실로 일체를 깨달아 본 참도인다운 말이다. 지극한 삼매경에서 도의 황홀한 존재를 확인하고, 그 황홀한 것에서 만물을 모습 짓게 한 상과 만물을 존재케 한 정기를 깨달아 보았다 했으니 놀라운 식견이라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도를 물건이라 한 것은, 모태가 자식을 품고 있듯, 도가 품고 있는 상과 정을 물질의 원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과 정이 진화한 물질이 만물의 핵으로서 씨눈이며, 이 씨눈이 모태 속의 태아처럼 자라고 자라서 완성된 것이 천지와 자연인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사실을 아마도 깊은 명상 중에 깨달아 보았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자연히 그와 같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었으랴!

그리 생각해보면 노자를 제외하고 그 누가 천하 만물의 생성 이치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상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성인을 얼핏 살펴보면 붓다만이 다 깨달아 보았을 것 같다. 하지만 결코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노자는 도덕경 81장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성인을 예로 들어 이보다 더 깊은 깨달음의 교훈을 전해준다. 따라서 신석기 시대나 어쩌면 구석기 시대 이전에 이미 도를 다 깨치고 천상천하를 유유자적한 대도인이 있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이미지 확대보기
정경대 박사의 '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