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방위비 증액 압박에 일본 반발...미·일 외교·안보 회담 파행

미국과 일본은 오는 7월 1일 워싱턴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과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참석하는 외교·국방장관 회담(2+2)을 열 계획이었다. 회담은 양국이 외교와 안보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미국이 최근 일본에 방위비를 GDP 대비 3.5%로 올릴 것을 새롭게 요구하자 일본이 회담을 취소했다. 미국의 이번 요구는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이 앞장서 추진해왔다. 콜비는 지난 3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도 일본에 GDP 대비 3% 이상의 방위비를 요구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 세 명은 FT에 "미국이 기존에 요구한 3%보다 높은 3.5%를 새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현재 주일미군 방위비를 연간 평균 2조1000억~2조2000억 원 정도 분담하고 있다. 이는 미군 주둔과 관련된 별도의 비용이며, 일본 전체 방위비(국방예산)와는 다르다. 일본의 방위비 비율은 내각부 기준으로 GDP 대비 1.6% 수준이며, 방위성 기준으로는 1.8~2%에 근접하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아시아 안보 전문가 잭 쿠퍼는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지출 수준을 일관성 없고 비현실적으로 요구하는 메시지는 미국을 가장 지지하는 관리와 전문가들의 마음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미국, 동맹국에 방위비 증액 요구 확대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 동맹국들에 이어 아시아 동맹국들에게도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에게 유럽 국가들이 방위비를 늘린 '새로운 사례'를 따를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게 한 해 경제 크기 대비 5%의 방위비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유럽 동맹들이 글로벌 기준을 세우고 있다. 그 기준은 GDP 대비 5% 방위비 지출이다"라고 밝혔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한 해 경제 크기 대비 2.8%의 방위비를 지출했다. 미국의 요구대로라면 방위비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나야 한다.
◇ 일본의 정치적 판단과 반응
일본 정부는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대해 "일본의 방위비는 일본이 정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3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의 방위비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시키는 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방위비 증가율을 몇 퍼센트로 정하는 조잡한 논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동아시아 담당 국장 크리스토퍼 존스턴은 "2+2 회담은 미·일 동맹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으로 소중한 기회이기에 매우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며 "일본이 회담을 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한 것은 양국 관계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불안이 크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존스턴은 "일본은 선거 전에 회담을 열면 이익보다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재선 이후 미국과 일본은 안보뿐 아니라 무역 협상 등 다양한 문제를 두고 복잡한 협상 구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상호적' 관세를 부과한 이후 양국은 어려운 무역 회담을 진행 중이다. 일본 방위성은 회담 취소 여부에 대한 공식 언급을 거부했으며, 다음 2+2 회담 시기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미·일 동맹 내 방위비 분담과 외교적 신뢰, 일본 내 정치 상황이 맞물리면서 복합적인 갈등으로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는 강경한 태도는 앞으로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