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배터리 구독' 사업 펼친다…제조업 넘어 플랫폼 기업으로
단순 배터리 제조 넘어 교체·재활용·로봇까지…북미·동남아로 영토 확장 계속
단순 배터리 제조 넘어 교체·재활용·로봇까지…북미·동남아로 영토 확장 계속

CATL은 전 세계 EV 배터리 시장의 약 38%를 점유한 독보적인 기업이다. 테슬라를 비롯해 폭스바겐·BMW 등 세계 완성차 업체 대부분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기술력 또한 서구 경쟁사를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간 업계 내 영향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았으나 지난 5월 홍콩 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초과배정 옵션까지 포함해 총 410억 홍콩달러(약 7조433억 원)에 이른다.
◇ 유럽 심장부에 170GWh급 생산기지 구축
CATL은 기업공개로 확보한 자금의 90%를 유럽 시장 확장에 투입한다. 핵심은 헝가리 데브레첸에 73억 유로(약 11조5459억 원)를 투자해 건설 중인 연 100GWh 규모의 초대형 배터리 공장이다. 2025년부터 차례대로 가동할 이 공장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 유럽 주요 완성차 업체에 공급할 핵심 거점이다. 이미 독일에서는 18억 유로(약 2조8469억 원)를 투자한 연 14GWh 규모의 공장을 가동하며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나아가 지난해 12월에는 스텔란티스와 41억 유로(약 6조4859억 원)를 함께 투자해 스페인에 연 50GWh 규모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이 공장은 2026년 말부터 생산을 시작해 유럽 내 저가형 전기차 시장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 '출혈 경쟁' 내수시장 탈출…수익성 찾아 해외로
실제로 중국 내수시장은 BYD 등이 주도하는 극심한 가격 전쟁으로 수익성 확보가 어려운 처지다. CATL의 니쥔 최고제조책임자는 최근 세계경제포럼에서 "거대 기업의 출혈 경쟁이 계속되면 다른 경쟁사가 퇴출되고 시장이 독점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컨설팅사 시노 오토 인사이트의 투 레 상무이사 역시 "CATL은 이미 중국 내 거의 모든 EV 제조사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어 내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며 해외 진출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 '충전 5분' 배터리 교체, 유럽의 게임 체인저 될까
CATL은 유럽 시장 공략의 핵심 무기로 '배터리 교체 기술'을 내세웠다. 이 기술은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대신, 완전 자동화된 교체소에서 5분 안에 완충된 배터리로 통째로 바꾸는 방식이다. 충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배터리 수명 저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소비자는 배터리를 뺀 값으로 차량을 구매하고 배터리는 구독 형태로 사용해 초기 구매 부담을 낮추는 사업 모델도 가능하다. CATL은 앞으로 3년 안에 중국에만 1만 개의 배터리 교체소를 세울 계획이며, 이 경험을 유럽 시장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물론 높은 초기 기반시설 구축 비용과 제조사마다 다른 배터리 규격은 표준화가 필요한 과제다. 현재 유럽에서는 중국의 니오가 일부 국가에서 60여 개의 교체소를 운영 중이며, 스텔란티스가 일부 모델을 대상으로 실증 사업을 진행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CATL의 등장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컨설팅사 패스트마켓의 코너 와츠 배터리 원자재 분석가는 "CATL은 막강한 시장 지배력과 중국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 관계를 통해 배터리 표준화를 주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럽 배터리 교체 산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업 가운데 CATL의 시장 지위를 생각할 때 이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는 회사는 없다"면서 "특히 최근 기업공개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은 유럽 안에 기반시설을 구축할 충분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유럽 넘어 북미·동남아까지…'에너지 기업' 변신 가속
CATL은 배터리 제조를 넘어 신사업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2023년 자회사 'CharGo'를 세워 전기차용 충전·시험 로봇 개발에 나섰으며, 이동형 에너지 저장장치, 배터리 재활용 등 신에너지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CATL의 영토 확장은 유럽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해 현지 배터리 사업에 참여하며 2026년 생산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북미 시장 진출도 추진, 현재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 공장 설립 및 기술 사용권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다.
반면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의 환경단체 '교통과 환경(T&E)'의 줄리아 폴리스카노바 수석 이사는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이 표준화된 셀 디자인에 합의해야만 배터리 교체 기술이 대규모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배터리 교체가 일부 시장에서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