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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알파벳·MS, AI 질주 속 현금흐름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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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알파벳·MS, AI 질주 속 현금흐름 '빨간불'

AI 데이터센터·기반 시설 구축에 천문학적 비용…'자산 경량화' 모델서 '자산 집약형'으로 전환
기업 현금 창출력 감소, 장기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닷컴 버블 당시와 유사성 경고도
거대 기술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알파벳 등이 AI 기반 시설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사진은 미국에 건설 중인 한 데이터 센터의 모습. 이러한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은 기업의 현금흐름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거대 기술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알파벳 등이 AI 기반 시설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사진은 미국에 건설 중인 한 데이터 센터의 모습. 이러한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은 기업의 현금흐름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로이터
인공지능(AI)을 등에 업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연일 경이로운 실적을 발표하며 시장의 환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적표 이면에서는 막대한 기반 시설 투자에 따른 '현금 가뭄'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실제로 2025년 한 해에만 미국의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4대 기업이 AI와 클라우드 기반 시설에 투자할 금액은 약 3150억 달러(약 437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장밋빛 미래를 향한 투자가 현재의 재무 건전성을 위협하는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AI 붐의 숨은 위험은 기업의 순이익과 잉여현금흐름의 차이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각종 비용과 세금, 설비 투자액 따위를 빼고 남은 돈으로, 기업의 실제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팩트셋에 따르면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4대 기술 기업의 2분기 합산 순이익은 2년 전과 비교해 73% 급증하며 910억 달러(약 126조 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잉여현금흐름은 오히려 30% 줄어든 400억 달러(약 55조 원)에 그쳤다. 벌어들이는 이익은 늘었지만, 실제 수중에 남는 현금은 줄어든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AI 시대를 맞아 사업 방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기술 기업들은 지적 재산, 소프트웨어 등 무형자산을 바탕으로 하는 '자산 경량화' 방식으로 막대한 현금을 창출했다. 그러나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그래픽 처리 장치(GPU), 데이터 센터, 전력 시설 같은 대규모 유형자산 투자가 필수가 되면서 '자산 집약적'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물론 이런 투자가 낳는 좋은 효과도 크다. AI 기반 시설 투자는 하드웨어 제조, 건설, 에너지, 소프트웨어 등 여러 산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자 1달러에 3~4달러의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나타나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하며, 앞으로는 전례 없는 경제와 산업 혁명을 이끌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불어나는 이익, 말라가는 현금


개별 기업의 사정은 더욱 두드러진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는 2분기 순이익이 36% 늘었지만 잉여현금흐름은 22%나 줄었다. 메타는 2025년 자본적 지출이 지난해와 비교해 2배로 늘어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AI 관련 투자에 따른 현금흐름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메타의 수전 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생성형 AI 같은 신규 투자를 두고 "아직 수명 주기의 초기 단계라며 짧은 기간 안에는 상당한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해 투자금 회수에 시간이 걸릴 것을 시사했다.

현재 투자자들은 이들 기업의 자산 중심 사업 방식이 과거의 자산 경량화 방식만큼 수익성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에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자산운용사 칼라일 그룹의 제이슨 토머스 리서치 총괄은 "아직 그에 대한 증거는 없다"며 "사람들이 놓치는 변수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 모든 자본 지출이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생산적일 수 있지만, 주주들의 실제 투자 회수 기간을 넘어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과 닮았다. 닷컴 버블 때처럼 먼 미래의 수익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과잉투자가 일어나고, 그 회수 불확실성 탓에 시장 전반에 나쁜 영향이 나타날 위험도 있다. 물론 지금의 AI 주도 기업들은 이미 상당한 수익을 내는 성숙한 기업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매출과 이익에 대한 가정이 너무 낙관적인 것으로 드러나면 현재의 투자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 저금리 시대의 종언?…경제 전반 뇌관 되나


더 큰 문제는 거시 경제에 미칠 파장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대형 기술 기업들은 풍부한 잉여현금을 금융시장에 다시 투자해 장기 금리를 안정시키는 몫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AI와 생산기지 본국 복귀(리쇼어링) 따위로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현금 창출력이 떨어져, 금리가 과거처럼 낮은 수준으로 머물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 여기에 연방 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2%를 웃도는 물가 상승까지 맞물리면서, 앞으로 금리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훨씬 웃돌아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AI 붐은 멀리 보면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지만, 짧게 보면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재무 압박과 금리 상승 가능성 등 숨은 위험을 품고 있다. 기업들은 단기 재무 건전성 관리와 장기 투자 수익 실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투자자와 정책 당국 역시 이런 변화가 가져올 구조의 변화와 위험을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