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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연쇄 충돌,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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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연쇄 충돌,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흔든다

이란-헤즈볼라-후티 축과 이스라엘 충돌이 한국의 경제·군사·외교에 미칠 파장을 분석한다
중동 분쟁에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중동 분쟁에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19세기 프러시아 군사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저서 '전쟁론(On War)'에서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라고 정의했지만, 오늘날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쟁과 평화, 군사와 금융,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가 뒤섞인 '복합 정치'가 생생한 현장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남레바논 상공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저 지역 뉴스가 아니라,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글로벌 해상 질서에 대한 경고음이기도 하다.

이 글은 2025년 12월 초 쿠웨이트 타임스(Kuwait Times)가 보도한 이라크 중앙은행의 헤즈볼라·후티 자산 동결 발표와 번복, 이란 혁명수비대의 걸프 해상 훈련, 이스라엘의 남레바논 공습을 토대로, 한국의 안보와 경제 관련 시각에서 그 의미를 분석한 것이다.

이라크의 ‘실수’가 보여준 이란 영향력의 깊이


이라크 중앙은행은 공식 관보를 통해 헤즈볼라와 후티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자산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실수였다”고 정정했다. 총리가 긴급 조사 지시를 내렸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실수’가 발생했고, 왜 이렇게 빨리 되돌려졌느냐이다.
헤즈볼라와 후티는 이란이 후원하는 대표적 무장 세력이다. 이라크 정부가 이들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다는 것은, 미국과 서방의 대이란 제재에 부분적으로 동조한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조치가 즉시 번복된 것은, 이라크 정치·금융 시스템이 이란과 연계된 세력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라크는 균형자가 아니라, 점점 ‘저항 축’ 쪽으로 기울어가는 국가가 되고 있다. 이는 중동에서 미국·걸프·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힘의 균형이 더 복잡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라크가 이란 축에 더 가까워질수록, 걸프와 호르무즈 해협에서 긴장은 쉽게 낮아지기 어렵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렛대로 삼는 혁명수비대의 메시지


이란 혁명수비대는 걸프 해역에서 대규모 해상 훈련을 벌이고, 인근에 있는 미 해군 함정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걸프(페르시아만)는 세계 원유·가스 수송의 목줄과 같은 곳이다. 이란은 오래전부터 이 해협을 국가 생존과 체제 안정을 방어하는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이번 훈련의 목적은 단순한 군사적 준비 태세 과시가 아니다. 이란은 “우리는 언제든 이 해협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과 걸프 왕정국가, 이스라엘, 그리고 전 세계 에너지 수입국들에게 동시에 보내고 있다.

한국은 이 해협을 통해 원유와 가스를 들여온다. 호르무즈가 봉쇄되거나 긴장 고조로 선박 운항이 차질을 빚으면, 한국 경제는 즉각적인 충격을 받는다. 가격 상승뿐 아니라, 물리적 공급 차질과 보험료 폭등, 운송 루트 변경 비용이 동시에 덮쳐 온다.

남레바논의 저강도 전쟁 – 가자, 시리아, 홍해와 하나의 띠로 이어진다


한편 레바논 남부에서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저강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휴전과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경 일대는 공습과 포격이 끊이지 않는 긴장 지대로 남아 있다.

이 전선은 가자 지구, 시리아 남부, 이라크·시리아 내 친이란 민병대, 예멘 후티의 홍해 공격과 하나의 띠로 연결된다. 이 띠는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란이 다 년 간 구축해 온 ‘저항 축’의 물리적 표현이다. 그리고 이 띠는 원유·가스·화물을 실은 선박이 지나가는 해상 루트와 거의 겹친다.

중동의 전장 지도 위에 에너지 해상 루트를 겹쳐 보면, 위험 지점은 거의 일치한다.

한국이 준비해야 할 에너지·해상·외교 전략


미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생전에 유럽 질서를 논하면서 “지정학이 단순한 지도 상의 선에서가 아니라, 에너지·금융·동맹의 연결망 위에서 작동한다”고 말한 바 있다. 중동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은 세 가지 차원에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

첫째, 에너지 측면에서 중동 의존도를 완화할 수 있는 대체 공급원과 비축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호주·아프리카·중남미 등으로 에너지 수입원을 다변화하지 못하면, 호르무즈 한 곳의 긴장이 한국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다.

둘째, 해군·해경·해운 측면에서 호르무즈, 아덴만, 홍해, 수에즈 운하, 동지중해까지 이어지는 해상 루트의 안보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중장기 구상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동맹국들과의 연합 호위·감시 체제에 참여하고, 한국 선박 보호를 위한 법적·군사적 장치를 정비해야 한다.

셋째, 외교 전략 차원에서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 이란을 둘러싼 복잡한 역학을 한반도 안보와 연계해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란과 북한의 미사일·핵 협력, 이란과 러시아의 군사 공조, 중동과 동북아의 에너지·무기·기술 교환 구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 한국은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을 통해 ‘먼 전쟁의 충격’을 경험했다. 중동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한국에 전달되는 경로는 훨씬 더 직접적이다. 한국이 중동을 여전히 ‘기름 파는 나라들의 집합’ 정도로만 본다면, 다음 위기 때는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