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다극 군사 산업 질서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자립과 억지력 강화의 길
이미지 확대보기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최근 발표한 ‘전 세계 방산 기업 100대 순위’ 보고서는 튀르키예·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유라시아 국가들의 군사 산업이 역사상 유례 없는 속도로 부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미·중 패권 경쟁에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구조적 변화가 세계 안보 질서를 다시 쓰고 있으며, 이러한 다극화된 군사경제 환경은 한국이 어떤 억지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동·유라시아 군사산업의 ‘첫 번째 도약’: 전쟁 수요와 산업 체질의 결합
SIPRI가 제시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통적 방산 강국들이 아닌 국가들이 세계 군사 경제의 주류로 편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자체 산업 기반을 빠르게 확장하며 미국·유럽에 맞먹는 전력 공급국으로 부상했다. 튀르키예는 드론과 미사일 체계를 중심으로 독자 공급망을 완성했고, 아랍에미리트는 국영 방산그룹을 중심으로 중동 군사경제권의 허브로 올라섰다.
전쟁이 산업을 재편한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의 직접적 영향
SIPRI는 이들 국가의 급성장을 ‘전쟁이 만든 산업적 구조 변화’로 규정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충돌은 기존 군사산업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미국과 유럽이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지 못하는 사이 중동·유라시아 국가들이 공백을 채우기 시작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무인기·요격체계·정밀유도탄 등 최전선 기술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고, 터키는 저비용·고효율 드론의 세계 표준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전통적 무기체계와 달리 빠르게 확장될 수 있어 지정학적 영향력 또한 확장된다.
미·중 경쟁을 넘어 새로운 ‘군사 다극화’: 방산 산업이 전략 지도를 바꾸고 있다
이들 국가의 부상은 단순한 산업 경쟁이 아니다. 군사산업은 국가의 외교력과 전략적 영향력의 핵심이며, 산업화된 군사력은 국가 간 위계의 재편을 의미한다.
이 네 개의 축은 국가 간 안보 환경을 더욱 복합적이고 불안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연대·협력 구도를 만들고 있다.
한국에 대한 시사점: 군사경제의 시대에서 ‘전략국가’로 도약하려면
중동·유라시아의 급부상은 한국에 두 가지 핵심 전략을 요구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술 기반과 산업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전쟁 위협의 최전선에 위치한 국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군사산업을 경제적 성장의 수단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국가 억지력의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
한국이 추구할 전략적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한국형 정밀타격·무인전력·감시정찰·방공지휘체계의 산업화를 가속화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국가로 도약하는 것이고 둘째는 동맹 의존을 넘어 독자적 생산·보급능력을 갖춘 ‘전략적 자립형 방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셋째는 군사산업의 성장과 동시에 한국형 억지 전략을 제도화하여 비핵국가의 한계를 실질적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적 방향은 한국이 단순한 방산 수출국을 넘어 자유주의 진영 내부에서 전략적 리더십을 가진 이른바 '전략 국가(a strategic nation)'로 성장하는 기반이 된다.
중동·유라시아의 부상은 국제질서 다극화의 가속이며, 한국의 선택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세계는 이미 산업과 군사력이 결합하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 전쟁은 기술과 산업의 결합을 가속하고, 그 결과는 다시 국제 정치를 재편한다. 한국은 이러한 구조 변화의 가장자리에서 관찰하는 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변화 중심부에 서 있으며, 선택을 늦출 경우 전략적 공간이 축소된다.
따라서 한국은 새로운 현실주의 세력균형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 억지를 갖추고 K-방산 빅4인 한화그룹, 현대로템, LIG넥스원, 한국항고우주산업(KAI)를 중심으로 주요 방산 분야 별로 국내 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방위 산업을 재편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이 미래 국제 질서에서 평화와 주권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