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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0월 일자리 10만 개 증발 ‘고용 쇼크’… 트럼프발 ‘R의 공포’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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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0월 일자리 10만 개 증발 ‘고용 쇼크’… 트럼프발 ‘R의 공포’ 현실화

실업률 4.6%로 4년 만에 최고치… 관세·이민 규제 역풍에 노동시장 ‘휘청’
美 제조업·소비 동반 위축… 韓 수출·금융 시장 ‘복합 위기’ 경고등
타겟 엔시니타스(Target Encinitas) 지점 채용 공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타겟 엔시니타스(Target Encinitas) 지점 채용 공고. 사진=로이터
견고했던 미국 노동시장의 엔진이 급격히 식고 있다. 지난 10월 비농업 부문 일자리가 10만 개 이상 증발하며 팬데믹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실업률마저 4.6%로 치솟으며 경기 침체(Recession)를 뜻하는 ‘R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은 지난 16(현지시각), 미국 노동통계국(BLS) 발표를 인용해 고율 관세와 이민 단속 강화 등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노동시장에 강력한 하방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10월 일자리 105000쇼크… 통계 수정치에 시장 경악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국의 고용 시장은 뚜렷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11월 비농업 신규 고용은 64000명을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소폭 웃돌았으나, 이는 앞선 10월의 대규모 고용 감소를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특히 수정 발표된 10월 고용 수치는 충격적이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악화한 10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경기 침체 이후 가장 가파른 감소세다. 8월과 9월 수치 또한 각각 26000개 감소, 108000개 증가로 하향 조정됐다. 통계 수정치만 합산해도 수만 개의 일자리가 통계상에서 사라진 셈이다.

실업률 상승세도 가파르다. 올해 14.0%였던 실업률은 114.6%까지 치솟았다. 이는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이앤 스웡크 KPM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실업률이 급등한 사실은 경제가 성장한다는 지표와 달리 대다수 미국인이 경기를 비관적으로 느끼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제조업·공무원 일자리 직격탄… 트럼프 정책의 역설


이번 고용 한파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조업 분야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고율 관세 부과에 따른 비용 상승 부담으로 11월에도 일자리가 줄었다. 무역 전쟁이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는 행정부의 주장과 달리, 현장에서는 채용을 동결하거나 인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 부문 일자리 감소도 두드러졌다. 연방 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과 공무원들의 대규모 사직 패키지 수용이 맞물리면서 10월에만 연방 공무원 수만 명이 일터를 떠났다. 올해 1월 이후 사라진 연방 정부 일자리는 271000개에 이른다.

니콜 바쇼 집리크루터 노동 경제학자는 "이번 보고서는 전반적인 성장 정체를 보여준다""기업들이 관세, 지정학적 불확실성, 끈질긴 인플레이션 등 정책적 난관에 직면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임금 상승세도 둔화했다. 11월 시간당 평균 임금은 36.86달러(54500)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오르는 데 그쳤다. 여전히 높은 물가 수준을 고려할 때 가계의 실질 구매력은 약화했고, 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레저·접객업 등 소비 밀접 업종에서 일자리가 감소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민자 감소가 실업률 폭등 막아… 구조적 취약성 노출


전문가들은 이민자 감소가 없었다면 실업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이민 단속으로 노동시장 진입 인구가 줄어들면서, 적은 일자리 창출로도 실업률 급등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착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웡크 이코노미스트는 "이민자 부재와 고령 근로자의 은퇴에 따른 경제활동 참가율 저하가 없었다면 실업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시장의 질적 저하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정규직을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근로자 수는 9월부터 11월 사이 90만 명 이상 급증했다. 또한, 5주 미만 신규 실업자 수는 11월 기준 250만 명으로 202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샘 쿤 앱캐스트 이코노미스트는 "해고된 근로자나 구직자 입장에서 현재 채용하는 기업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역시 "공식 통계가 일자리 창출 규모를 월 6만 개가량 과대평가하고 있을 수 있다"며 노동시장 데이터를 "복잡하고 이례적이며 어려운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연준이 지난주 올해 들어 세 번째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도 이러한 노동시장의 냉각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美 경기 침체 현실화, 한국 경제안보 복합 위기온다


미국 고용 시장의 침체는 단순한 대외 변수를 넘어 한국 경제 안보를 위협하는 복합 위기의 신호탄이다.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 국면(Recession)에 진입하면, 대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수출 전선에는 비상이 걸린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수출 절벽의 현실화다. 미국 내 소비 위축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가전, 반도체 수요 감소로 직결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장벽과 맞물려 미국 내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면, 미국 공장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불가피하다. 이는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기조를 흔들고, 국내 설비투자와 고용까지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진다. 미국 연준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속도를 높이면 한미 금리 격차 축소로 원·달러 환율은 일시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 공포가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해 달러 강세를 유도할 경우, 환율 변동성은 오히려 확대될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경기 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 경제가 수출 부진금융 불안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와 기업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수출 시장 다변화와 공급망 리스크 관리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