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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대규모 감원에 흔들리는 사무직 일자리…美 고학력 근로자들 “안정성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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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대규모 감원에 흔들리는 사무직 일자리…美 고학력 근로자들 “안정성 사라져”

지난 2015년 6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연방법원 앞에서 변호사들이 서류가방을 들고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5년 6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연방법원 앞에서 변호사들이 서류가방을 들고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첨단 인공지능(AI) 기술의 확산과 대기업 감원이 겹치면서 미국 사무직 근로자들 사이에서 고용 불안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때 경기 변동과 구조조정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여겨졌던 고학력 화이트칼라 계층마저 일자리 안정성에 대한 확신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고용지표와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미국 사무직 근로자들이 해고 가능성과 재취업 전망을 갈수록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전날 발표된 미국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은 4.6%로 소폭 상승했다. 특히 사무직 비중이 높은 정보기술과 금융 부문에서는 지난 10월과 11월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노동부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사무직 고용이 집중된 산업 전반에서 채용이 둔화됐고 대졸 이상 근로자의 실업률도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역사적 저점에 근접한 수준이다. 장기간 이어진 인플레이션과 높은 생활비 부담 속에서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대졸 이상 근로자들마저 경제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사 학위 이상을 보유한 근로자들은 향후 1년 안에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을 평균 15%로 인식했다. 이는 3년 전의 11%에서 크게 높아진 수치다. 이들은 현재 자신들이 저학력 근로자보다 오히려 해고 위험이 더 크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과거와 비교하면 뚜렷한 인식 변화로 평가된다.

재취업에 대한 전망도 어두워졌다. 같은 조사에서 대졸 이상 근로자들은 지금 당장 해고될 경우 향후 3개월 안에 새 일자리를 찾을 확률을 평균 47%로 봤다. 3년 전 같은 조사에서 제시된 60%에서 크게 낮아졌다.

시카고대에서 홍보 업무를 맡았던 사라 랜드(42)는 지난봄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비슷한 시기 남편 역시 디지털 헬스 스타트업에서 해고됐다. 두 사람 모두 고액 연봉을 받던 직장인이었지만 현재는 보모 근무 시간을 줄이고 퇴직연금 납입을 중단했으며 두 번째 차량도 처분했다.

랜드는 “2022년만 해도 더 높은 직급과 연봉을 제안받아 이직했다”며 “지금은 인맥이 없는 지원서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느낌이고, 면접이 성사돼도 채용 과정이 몇 달씩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기업들은 한 사람이 여러 명 몫의 일을 하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마존, 유나이티드파슬서비스, 타깃 등 주요 기업들은 최근 사무직 인력 감축을 잇따라 발표했다. 과잉 채용에 대한 조정이라는 해석과 함께 백악관의 새로운 관세 정책과 예산 삭감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기업들의 채용 보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확산은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앞서 “AI가 미국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구인 사이트 인디드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 채용 공고는 팬데믹 이전 대비 68%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마케팅 직군 역시 81% 수준으로 회복이 더디다. 반면 AI로 대체하기 어려운 보건의료 분야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가이 버거 버닝글래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해고와 AI 관련 소식을 고려하면 고학력 근로자들의 불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일자리를 잃을 경우 상당 기간 구직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는 “사무직 근로자들이 더 이상 경제적 안전지대에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AI와 구조조정, 고물가가 맞물리며 미국 노동시장의 심리적 전환점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