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로 아쿠유 원전 지연되자 서방으로 급선회… 한전·웨스팅하우스 동반 참여 요청
단순 건설 넘어 SMR 기술 수출국 도약 목표… 한·미 IP 분쟁 해결할 새로운 협력 모델 부상
단순 건설 넘어 SMR 기술 수출국 도약 목표… 한·미 IP 분쟁 해결할 새로운 협력 모델 부상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에너지 전문지 에너지 인텔리전스는 지난 19일(현지시각) 튀르키예가 대형 원전 건설과 5기가와트(GW) 규모의 소형모듈원전(SMR) 구축을 위해 한·미 양국 기업에 손을 내밀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려는 튀르키예의 안보 전략과 원전 수출을 노리는 한·미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로, 글로벌 원전 시장의 판도를 바꿀 ‘빅딜’이 될지 이목이 쏠린다.
러시아 리스크가 부른 ‘서방 회귀’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 로사톰이 건설 중인 아쿠유(Akkuyu) 원전의 공기 지연이 자리 잡고 있다. 튀르키예 남부 메르신주에 건설 중인 아쿠유 원전은 서방의 대러시아 금융 제재 탓에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독일 지멘스가 핵심 부품 공급을 보류하는 등 기자재 반입마저 막히자, 튀르키예 정부는 특정 국가에 에너지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위험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신규 원전 부지로 거론되는 시노프와 트라키아 지역 프로젝트에서 공급망 다변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확실한 서방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시공의 한국’ + ‘원천기술 미국’… IP 분쟁 넘을 묘수 되나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튀르키예 국영 에너지 기업(TÜE AŞ)이 한국전력과 웨스팅하우스의 ‘동반 참여’를 요청했다는 점이다. 이는 양사가 겪고 있는 지식재산권(IP) 분쟁을 우회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튀르키예가 한국의 시공 능력과 미국의 외교·기술적 보증을 동시에 원한다고 분석한다. 튀르키예로서는 한국의 가격 경쟁력과 정해진 예산 내에 공기를 맞추는 시공 능력(On Time, On Budget)이 절실하고, 동시에 대규모 자금 조달과 지정학적 안정을 위해 미국의 보증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APR1400)이 자사 기술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발주처인 튀르키예가 3자 컨소시엄을 강력히 원한다면, 양사가 공동으로 사업에 참여해 이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MR 5GW 구축… 단순 수입 넘어 ‘기술 수출국’ 노린다
튀르키예는 대형 원전을 넘어 차세대 원전시장인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도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보도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총 5GW 규모의 SMR을 배치할 계획이다. 이는 1GW급 대형 원전 5기에 맞먹는 막대한 규모다.
주목할 점은 튀르키예의 전략이 단순한 전력 수급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튀르키예는 한·미의 선진 기술을 전수받아 자체 SMR 설계를 완성하고, 향후 제3국으로 수출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는 한국이 과거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을 발판으로 기술 자립을 고도화했던 성장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3자 협력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글로벌 원전시장은 ‘러시아 대 서방’ 진영으로 더욱 뚜렷하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원전 업계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이어 또 다른 기회를 잡았다는 분위기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전력과의 협력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가 변수다. 또한, 튀르키예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과 환율 불안 등 경제적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지도 관건이다. 월가 금융 전문가들은 "튀르키예 프로젝트는 파이낸싱(자금 조달) 구조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며 "미국 수출입은행(EXIM) 등 공적신용기관(ECA)의 지원 여부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