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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개혁 기획 연재 1편] 한국 금융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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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개혁 기획 연재 1편] 한국 금융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질문

4대 금융지주는 왜 지금 서로의 강점을 결합해야 하는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는 제조업의 힘으로 성장해 왔지만, 반도체와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등 첨단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제조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기술을 산업으로 키우고, 산업을 국가 전략으로 확장시키는 힘은 금융에서 나온다. 금융은 자본의 혈관이자 혁신의 인프라다.

그럼에도 한국 금융은 오랫동안 규제 완화냐 감독 강화냐라는 낡은 논쟁에 머물러 왔다. 속도는 논했지만, 금융이 어떤 국가 전략을 떠받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충분히 던지지 못했다. 본지는 이 지점에서 묻는다. 2036년 세계 5위 선진강국 도약을 위한 출발점으로서, 한국 금융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번 연재는 금융 개혁을 산업 경쟁력과 국가 전략으로 연결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금융을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수단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국 금융의 미래는 선택의 결과다. 그 선택을 독자와 함께 묻고자 한다.<편집자 주>

한국 금융의 가장 깊은 병목 분절화
한국 금융은 지난 20년 동안 외형은 성장했지만, 시스템 차원의 경쟁력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 4대 금융지주가 각자 독립된 왕국처럼 움직이며 전략·디지털 전환·리스크 관리·해외 확장을 따로 설계해 왔기 때문이다. 금융산업 구조를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한국이 지주 단위의 효율성 경쟁에는 성공했지만, 국가 금융 생태계 차원의 시너지 창출에는 실패한 사례라고 지적한다. 개별 금융지주의 최적화와 국가 금융 시스템의 최적화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온 것이다.

이 문제는 글로벌 경제학에서도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경고돼 왔다.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포터는 '국가들의 경쟁 우위'에서 개별 기업의 경쟁력이 자동으로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 금융의 현실은 이 경고가 금융 산업에서 구현된 사례에 가깝다. 금융기관은 효율화됐지만, 금융이 국가 성장 전략의 동력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와 금융 변동성은 이미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데이터 기반 금융, 자본시장 중심 성장, 해외 확장은 어느 한 금융지주가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4대 금융지주는 여전히 은행 중심의 개별 최적화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전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각 지주가 자기 성 안에서 방어막을 쌓는 데는 능숙했지만, 시장 전체의 방어선을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고 회고한다.

이 구조적 한계가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은 2026년을 맞아 2036년을 목표로 세계 5위권 선진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가라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구조화되며 외교안보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견뎌낼 힘은 결국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에서 나온다. 그러나 산업 경쟁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을 키우고 기술을 확산하며 위기를 흡수하는 금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국가 전략은 선언에 머문다.

글로벌 금융 환경 역시 빠르게 닫히고 있다. 저금리와 유동성 확장의 시대는 끝났고, 자본은 더 명확한 전략과 더 높은 신뢰를 요구한다. 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반 금융 경쟁은 이미 규모의 싸움으로 이동했고, 자본시장과 비은행 부문도 단일 금융그룹의 역량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문제는 한국 금융이 변화의 방향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 대응하면서 속도와 깊이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점이다. 분절화는 이제 비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의 시간표에서 뒤처질 위험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위기 국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미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광기, 패닉, 붕괴'에서 금융 위기의 본질은 개별 기관의 실패보다 조정 메커니즘의 부재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금융의 분절화는 평상시에는 관리 가능한 비효율로 보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 전체의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는 시스템 리스크로 바뀔 수 있다.

이로 인해 한국 금융은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이 약하고, 국내 자본시장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며, 비은행 부문도 잠재력 대비 확장이 제한된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은행이 많아서가 아니라, 금융그룹 간 역할 분담과 협력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한국 금융 전체가 작게 보인다고 진단한다. 이는 2036년 국가 도약 전략의 기초 체력이 충분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4대 금융지주 서로의 결핍 채울 퍼즐 조각 가져


4대 금융지주는 서로 다른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상호 보완적으로 맞물린다. KB는 안정성과 내수 기반이 강하지만 글로벌 확장은 느리고, 신한은 전략 기획과 실행력이 뛰어나며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빠르지만 자본 효율에서는 보수적 평가를 받는다. 하나는 글로벌 확장력과 투자은행 역량이 강한 반면 국내 포트폴리오의 일관성은 약하고, 우리금융은 성장 여력이 크지만 비은행 부문의 기초 체력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금융 전공의 한 경제학자는 이 조합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 한국 금융의 가장 큰 기회비용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2036년을 향한 국가 성장 경로에서 잃어버리는 시간의 문제다. 이들 강점이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된다면 한국 금융은 최소 10년 앞서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는 금융 경쟁력 제고를 넘어 산업 혁신과 수출, 기술 축적을 뒷받침하는 국가 성장 엔진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개별 지주가 자발적으로 협력에 나서기는 구조상 어렵다. 경쟁법과 여론의 시선을 고려하면 누가 먼저 손을 내밀기도 쉽지 않다.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주체는 시장 전체를 비추는 언론이다. 언론은 개별 금융지주의 이해관계를 넘어 금융 개혁이 산업과 국가 전략으로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한국 금융의 다른 병목은 은행 혼자 하는 금융

4대 금융그룹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리테일·자산관리·투자금융·디지털 전환·리스크 관리·해외 전략이 모두 분절돼 있다. 이 상태에서는 혁신이 내부에 머물고 확산되지 못한다. 한 금융지주 IT 임원은 각 지주가 비슷한 디지털 투자를 반복하며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다음 1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합병이 아닌 전략적 연대가 필요하다. 분절된 역량을 묶어 국가 성장 전략에 복무하도록 설계하는 문제다. 애덤 브랜든버거와 배리 네일버프는 '코오피티션(Co-petition)'에서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으면 시장 전체의 가치가 축소된다고 설명했다. 금융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동 전략 지도 없이 2036년 한국 금융 없다

글로벌 금융그룹들은 이미 공동 인프라와 공동 규제 대응으로 시장의 크기를 키우고 있다. 반면 한국 금융은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가진 그룹들이 따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의 시선에서 한국 금융은 네 개의 지주가 아니라 하나의 시장이다. 이 시장이 분절된 상태로 남아 있다면 2036년 세계 5위권 선진강국을 뒷받침할 금융 역량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금융의 연합 선택 아닌 국가 대전략의 출발점

금융의 미래는 인공지능,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글로벌 유동성 압축,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기반 자본 흐름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이는 금융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외교안보 역량을 동시에 좌우하는 국가 차원의 문제다. 금융이 살아야 산업이 부흥하고, 산업이 성장해야 외교안보 전략도 실질적인 힘을 갖는다.

본지가 금융 개혁을 국가 대전략의 첫 장으로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36년 세계 5위권 선진강국 도약이라는 목표는 금융 개혁에서 출발해 산업 개혁으로 이어지고, 그 위에서 외교안보 전략이 완성될 때 현실이 된다.

한국 금융의 선택은 곧 한국 국가 전략의 선택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