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도네시아 에너지 비용, 제조 원가의 15~20% 육박… 반도체·완성차 수율·가동률 동반 하락
산업연구원 "봉쇄 3개월 넘기면 제조업 생산비 최대 11.8% 상승"… 중소 협력사 연쇄 자금난 경보
산업연구원 "봉쇄 3개월 넘기면 제조업 생산비 최대 11.8% 상승"… 중소 협력사 연쇄 자금난 경보
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합동 공습(2026.2.28)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에 준하는 수준에 접어든 지 5주가 넘으면서, 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 등 동남아시아 생산 거점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전력난과 물류비 폭등이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했다. 산업연구원은 봉쇄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한국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최대 11.8%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너지 비용은 이미 오르고 있고, 일부 업계에서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카타르 가스전 복구에 수년이 걸릴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업계에서는 이 충격을 단기 이벤트로 보지 않는다.
베트남 북부의 현실, 전압 불안정에 불량률 오르고 원가는 치솟고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 액화천연가스(LNG)의 22%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보험료 급등과 군사 리스크로 선박 운항이 크게 위축되면서,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 전력망에 연쇄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베트남 국가전력망관리기구(NSMO)는 지난 3월 17일 워크숍에서 올해 전력 수요가 전년보다 8%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중동 분쟁으로 석탄·가스 연료 가격이 급등하고 일부 수출국이 공급을 제한하는 추세여서 화력 발전소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vietnam.vn). 베트남은 이미 지난해 5월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2204.07 베트남 동(약 126원)으로 4.8% 올린 뒤, 3개월마다 추가 조정이 가능한 요금 변동 메커니즘을 가동 중이다. 올 3월 26일부터는 휘발유·경유·항공유 환경보호세를 리터당 0동으로 내리고 소비세도 0%로 낮추는 긴급 세제 조치를 단행했다(B-Company, 3월 31일).
베트남에 누적 232억 달러(약 35조 원)를 쏟아붓고 6개 공장에서 8만 7000명을 고용 중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에너지 절감 공정과 부품 공급망 다변화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현지 업계에서는 대규모 정전으로 라인이 멈추는 사태는 없지만, 전압 불안정으로 정밀 부품 불량률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에너지 집약 공정에서는 에너지 비용이 제조 원가의 15~20%까지 치솟으면서 수익성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처럼 미세 공정이 필요한 품목은 단순 원가 문제를 넘어 제품 품질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압 불안정이 에너지 비용보다 더 무서운 변수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 구조적 취약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은행은 베트남이 2023년 전력 위기로 국내총생산(GDP)의 0.3%에 해당하는 14억 달러(약 2조 1400억 원) 손실을 입었다고 추정한 바 있다. 2026년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빠진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RE100 달성해도 보조금 축소 '복병'… 협력사 납품 차질 현실화 경고음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ESDM)는 최근 "글로벌 LNG 가격 폭등으로 산업용 전기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아세안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산업용 전기 요금을 유지하던 인도네시아마저 보조금 재정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생산법인은 100% 재생에너지 전환(RE100)을 달성하고, 공장 에너지 관리 시스템(FEMS) 고도화로 대기 전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셀 합작공장도 현지 부품 조달 비중을 높여 관세·에너지 리스크를 분산하는 중이다. HS효성첨단소재는 지난 3월 30일 베트남 동나이성 공장 지붕에 17.5메가와트피크(MWp) 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가동하며 자체 전력 조달 비중을 높이는 한편, 직접전력구매계약(DPPA) 도입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해운 운임 50~80% 폭등… 수출길 막힌 기업들, 보험료 폭등이 더 무섭다
호르무즈 봉쇄 충격은 전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조선과 LNG선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우회 항로로 전환되면서 운송 기간이 수 주씩 길어지고, 해운 운임은 기존 대비 최대 50~80% 오를 수 있다(한국무역협회).
현장 충격은 이미 가시화됐다. 베트남에서 완제품을 유럽·미주로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선복 확보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인도 첸나이·푸네 지역의 자동차·가전 생산 라인은 중동 및 유럽발 부품 수급 지연으로 가동률이 예년보다 70%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저임금을 보고 동남아에 들어온 중소 섬유·의류 업체들은 전기료와 물류비가 동시에 오르면서 원가 경쟁력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호소가 잇따른다.
간과하기 쉬운 핵심 변수도 있다. 전쟁 위험 해역에 대해 전문 선박 보험사들이 인수를 거부하거나 보험료를 5~10배로 올리면서, 물리적 봉쇄가 완성되기 전에 이미 민간 선박의 자율 회피가 먼저 작동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러한 이유로 해협이 공식 봉쇄되지 않더라도 물류 지체와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이 구조는 2021년 수에즈 운하 에버기번호 좌초 사고 당시와 동일하다. 당시 선박 한 척의 일주일 사고만으로 유럽발 컨테이너 운임이 두 배 넘게 뛰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봉쇄의 비용 충격은 그보다 훨씬 넓고 길다.
자금력이 충분한 대기업은 비축 재고와 다변화된 공급망으로 버티고 있다. 문제는 2·3차 협력사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과 물류비를 동시에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 협력사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고 있으며, 이들이 무너질 경우 대기업의 생산 라인도 연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산업연구원 빙현지 전문연구원은 "에너지원·원자재 조달의 다변화와 함께 에너지·산업재 공급망을 통합 관리하는 부처 간 모니터링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 이 위기는 세 가지 지표를 함께 봐야 윤곽이 잡힌다. 호르무즈 해협 민간 선박 통행 재개 여부, 카타르·UAE 대체 공급 경로의 처리 용량 확대 속도, 그리고 전쟁 보험 시장의 정상화 시점이다. 이 세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동남아 K-제조벨트의 수익성 회복 시점도 결정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S&P글로벌은 중동발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2026년 상반기까지 세계 물가 상승 압력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