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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전쟁'에서 한국은 살아남을 것인가... 미 마이크로소프트발 광반도체 재편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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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전쟁'에서 한국은 살아남을 것인가... 미 마이크로소프트발 광반도체 재편의 실체

구리선의 종말과 광자 기술의 역습... 인공지능 인프라 전력 한계 극복 위한 미 이스라엘 연합의 파상공세
기술 장벽 높이는 미국과 추격하는 삼성... 실리콘 포토닉스 파운드리로 승부수 던진 대한민국 반도체의 운명
마이크로소프트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마이크로소프트 로고. 사진=로이터


전류가 흐르는 구리선이 데이터센터의 혈관 역할을 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폭발적 수요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량이 국가 단위의 전력망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자, 전기가 아닌 빛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광반도체가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광반도체는 기존 방식 대비 전력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데이터 전송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확보하려는 차세대 패권 기술로 꼽힌다.

글로벌 기술 전문 매체들의 분석과 업계 동향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클라우드 거인들은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광학 칩 공급망을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문 기업 위주로 재편하며 기술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삼성전자는 최근 실리콘 포토닉스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고 에이아이 시대에 최적화된 고성능 광학 링크 솔루션 양산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는 인텔과 티에스엠씨가 주도해온 광반도체 생태계에 한국이 본격적으로 가세하며, 메모리 반도체의 강점을 넘어 광학 기술 기반의 새로운 반도체 지정학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전선 없는 데이터센터, 광자가 여는 새로운 칩의 시대


마이크로소프트가 추진하는 광반도체 혁명은 단순한 부품 교체가 아니다. 기존의 전기식 신호 전달 방식은 고속 데이터 전송 시 막대한 열을 발생시키고 전력 효율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한계에 봉착했다. 반면 광반도체는 빛을 이용해 데이터를 전송함으로써 에너지 소모를 90% 이상 줄이면서도 전송 속도는 수십 배 끌어올릴 수 있다. 구리선의 시대가 끝나고 빛의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의 물리적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광학 두뇌와 미국의 설계가 만든 거대한 장막


이번 공급망 재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스라엘 기업들의 약진이다. 군사 광학 기술과 양자 광학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기업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파트너로 낙점됐다. 미국은 설계와 표준을 제공하고, 이스라엘은 빛을 제어하는 핵심 소자 기술을 공급하는 폐쇄적인 ‘광자 카르텔’을 구축한 셈이다. 이는 기술적 사양 문제를 넘어 안보 자산으로서의 광학 기술을 미국 우방국 위주로 통제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삼성 광통신이 마주한 제로 트러스트의 벽


그동안 삼성전자 광통신 사업부는 차세대 광모듈과 집적 광학 소자 개발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내건 새로운 보안 표준과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하드웨어 인증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미국 주도의 공급망 이니셔티브에 깊숙이 편입되지 못한 한국 기업들에 차세대 데이터센터의 문은 굳게 닫혔다. 이는 한국이 강점을 가졌던 기존의 미세 공정 제조 역량이 광반도체 시대에는 더 이상 절대적인 무기가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제조 주권의 실종, 빛의 전쟁에서 소외된 K반도체


문제는 이번 배제가 일회성 수주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광반도체는 설계와 제조 공정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한 번 공급망에서 소외되면 기술 표준 전쟁에서 영원히 뒤처질 위험이 크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HBM과 파운드리 수율 싸움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정작 미래 AI 인프라의 혈관인 광학 네트워크 주권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제조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차세대 표준 앞에서는 무력한 상황이다.

포스트 전자 시대, 생존을 위한 전략적 재설계가 시급하다


이제 반도체 산업의 승부처는 전자를 얼마나 잘 제어하느냐가 아니라 빛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번 결정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던져진 최후통첩과 같다. 우리는 지금껏 전자공학의 정점에서 승리를 구가해 왔지만, 광자 공학이라는 새로운 전장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이스라엘과의 파격적인 기술 협력이나 인수·합병(M&A) 없이는 대한민국 반도체의 미래에 빛조차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aed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