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폐기·하마스 무장해제·헤즈볼라 해체 — 이스라엘 3대 목표 모두 미달성
한국 선박 연 1000척 직격탄…운송 원가 최대 30% 상승 우려
한국 선박 연 1000척 직격탄…운송 원가 최대 30% 상승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이란은 지난 8일(현지시각) 2주간의 휴전에 전격 합의했다. 이스라엘 타임스(Times of Israel)는 지난 9일(현지시각) "이란의 군사 지도부가 타격을 받았지만 체제는 살아남았고, 이스라엘이 내걸었던 3대 전쟁 목표—이란 핵 폐기, 하마스 무장해제, 헤즈볼라 해체—는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합의나 전투 재개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스라엘 안팎에서는 또 한 번의 공수표라는 냉소가 나온다.
이란이 쥔 '호르무즈 카드'…연간 최대 147조 원짜리 노름판
휴전 이후 가장 뜨거운 쟁점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다. 이란 준관영 매체 타스님 통신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선박당 200만 달러(약 29억 원)의 '특별 안보 서비스비'를 부과하면 연간 수입이 1000억 달러(약 147조 원)를 웃돈다고 추산했다.
전쟁 전 하루 평균 140척이 이 해협을 통과했다는 점에 근거한 계산이다. 1000억 달러는 이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0~25%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호르무즈 통행료 부과 법안을 공식 승인했다.
해운·에너지 전문 매체 로이드리스트 인텔리전스와 AP통신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미 해협 통과 선박을 심사하고 중국 위안화로 통행료를 받고 있으며, 초대형 원유운반선 한 척이 200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사례도 보고됐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에 강요된 전쟁 상황 탓에 해협 통과를 위한 일련의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에즈·파나마 운하처럼 국제 기준 요금(척당 약 40만 달러)을 적용해도 연간 200억~250억 달러(약 29조~36조 원)가 이란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증권가의 최근 보고서에서 "척당 40만 달러 기준을 적용해도 연간 수익은 200억~250억 달러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이란이 일부 통행료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징수하려는 것은 달러 패권 약화가 아닌,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제재망을 우회하려는 현실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백악관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통을 '전쟁 성과'로 자축했지만, 해협 정보 분석업체 클리플러(Kpler)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통행량은 정상 수준보다 95% 줄어든 상태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닫혀 있다"고 공식 경고하고 있다.
한국 선박 연 1000척 위협…"운송 원가 최대 30% 오른다"
이 문제는 한국에 직접적인 충격을 던진다. 9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중동에서 한국으로 도착한 선박은 849척이다. 2023년 932척, 2024년 938척으로 매년 1000척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원유운반선만 382척에 이르며, 척당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적용하면 원유운반선 통행료 합계만으로도 연간 1조 원을 넘는다.
해운업계에서는 "통행료가 현실화되면 운송 원가가 최대 30%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국내 산업 전반에 큰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산업통상부는 통행료가 실제 부과될 경우 국내 기름값이 약 0.5%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현재 통행료 납부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0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에서 "한국 선박을 포함한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이 신속하게 재개돼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구체적 논의를 위한 외교장관 특사를 이란에 파견하기로 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자연 국제 해협으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상 통행료 부과가 금지돼 있다는 점에서 이란 법안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은 UNCLOS를 비준하지 않아 해당 협약에 법적으로 묶이지 않는다는 논리를 앞세울 가능성이 크다.
네타냐후 3번째 '미완의 전쟁'…중동 판도 다시 안갯속
이번 전쟁은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 인생 내내 꿈꿔온 시나리오에 가장 가깝게 맞아떨어진 국면이었다. 미국 대통령과의 밀착 공조, 개전 초반의 압도적 선제 타격—모든 패가 손에 쥐어졌지만, 결정타는 나오지 않았다.
이스라엘 안보 각료 한 명은 공영방송 칸에 "트럼프가 전쟁을 끝냈다. 2주 뒤 전투가 재개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면 이란은 자유롭게 재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국면에서 주목할 점은 이란의 재무장 속도다. 제재가 해제돼 자금이 풀리면 군사력 복원 속도는 가파르게 빨라질 수 있다.
이란은 극심한 공습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을 향한 미사일 발사를 멈추지 않았고, 호르무즈 봉쇄 위협을 지렛대로 협상 주도권을 지켜냈다. 헤즈볼라, 하마스 등 대리 세력도 여전히 무장한 채 건재하다.
야당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는 "네타냐후가 전략적 실패를 자초하고 미국에 거짓말을 팔았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빠르면 6개월 안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 미국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을 뒤집을 명분을 찾기 어렵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오는 11일(현지시각)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시작된다. 이 테이블에서 이란이 핵 프로그램 일부를 내주는 대신 제재 해제를 얻어내면, 연간 수십조 원의 자금이 테헤란으로 흘러 들어간다.
호르무즈 통행료 수입까지 더해지면, '타격받은 이란'은 빠른 속도로 되살아날 수 있다. 네타냐후가 세 번째 전쟁에서도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 사이, 이란은 오히려 협상 테이블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손에 쥐는 방향으로 판을 굳혀가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