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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철강 수입 관세 50%로 인상…중국산 저가 공세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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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철강 수입 관세 50%로 인상…중국산 저가 공세 차단

무관세 쿼터 47% 삭감·'용융·주조' 원산지 의무화…역대 최강 방어막 가동
세계 공급 과잉 7억2000만t 임박, 중국산 물량 아시아 역류 가능성 주목
유럽의회와 EU 회원국 정부는 수입 철강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올리고 무관세 수입 허용 물량을 47% 줄이는 데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의회와 EU 회원국 정부는 수입 철강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올리고 무관세 수입 허용 물량을 47% 줄이는 데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가 중국산 저가 철강의 공세에 흔들리는 가운데, 유럽이 가장 먼저 두꺼운 방어 장벽을 세웠다.

유럽의회와 EU 회원국 정부는 심야 협상 끝에 수입 철강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올리고 무관세 수입 허용 물량을 47% 줄이는 데 합의했다고 프랑스24(France 24)·AFP통신이 지난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연간 30만 명의 고용을 책임지는 유럽 철강 산업이 생존의 기로에 섰다는 위기감이 이번 결정을 밀어붙인 배경이다.

2013년 기준선 설정…"중국 과잉생산 이전으로 되돌린다"


이번 합의에 따라 무관세 수입 허용량은 연간 1830만t으로 축소된다. 이는 2024년 쿼터 대비 47% 줄어든 수치로, EU가 중국의 보조금 기반 철강 증산이 국제 시장 균형을 무너뜨리기 이전인 2013년 수입 물량 수준과 우연히 일치한다. 무역 질서를 중국 과잉생산 이전 상태로 되돌리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새 조치는 WTO(세계무역기구) 규범에 맞는 관세율 할당 쿼터(TRQ) 방식을 택했다. 정해진 쿼터 범위 내 수입은 무관세를 유지하되, 그 상한을 넘는 물량에만 50% 관세를 부과하는 구조다.

현행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는 오는 6월 말 만료되며 이번 합의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EU 집행위원회는 현행 세이프가드가 만료되는 오는 7월 1일부터 새 조치가 발효되도록 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최종 발효를 위해서는 유럽이사회와 유럽의회의 공식 비준 절차가 남아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새 조치 시행 시 역내 철강 산업 설비 가동률이 80% 수준까지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수입업자에게 철강이 실제로 생산된 원산지를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용융·주조(melt and pour)' 원칙도 함께 도입된다.

중국산 철강이 터키·베트남 등 제3국을 거쳐 원산지를 세탁한 뒤 EU 시장에 우회 유입되는 관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EU 무역담당 집행위원 마로시 세프코비치(Maros Sefcovic)는 "유럽 철강의 위상은 전략적 자율성과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세계 공급 과잉이 위험 수위에 이른 지금 외면할 수 없다. 이번 합의가 생산업체에 꼭 필요한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7억2000만t 과잉 공급의 진원지…유럽이 방어선 쌓은 이유


이번 조치의 무게는 수치가 말해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집계 기준 세계 철강 공급 과잉 규모는 2023년 6억t을 기록했고, 올해는 7억2000만t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잉 물량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나온다. 유럽에서 철강 제조업은 해마다 약 2000억 유로(약 340조 원)의 매출을 창출하며 30만 명 이상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현재 EU 철강 생산업체들은 미국의 50% 관세 부과와 수입 급증이 겹치면서 설비의 65% 수준에서만 가동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이 가동률을 8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EU가 이번 합의를 단순한 무역 방어가 아닌 산업 생존 전략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U의 50% 관세는 미국이 대부분의 외국산 철강에 부과하는 세율과 일치한다. EU는 미국을 설득해 EU산 철강에 대한 미국 관세를 낮추는 대신, 양측이 공동으로 중국산 철강에 맞서는 협력 구도를 모색하고 있다.

다만 새 조치가 미국과의 무역 마찰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EU 내부에서 나온다.

유럽철강협회(EUROFER)의 악셀 에거트(Axel Eggert) 사무총장은 "이번 조치는 철강 부문과 수십만 일자리를 지키는 결정적 발걸음"이라며 "오는 6월 말 현행 세이프가드 만료 전에 유럽의회와 이사회가 신속히 비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이 문 닫으면 중국산은 아시아로 온다…한국 철강 파장 불가피

EU의 방어막 강화가 한국 철강 시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중국의 주요 철강 수출 대상국 통계를 보면 베트남(810만t)에 이어 한국이 620만t으로 두 번째로 많은 물량을 받아들였다.

EU가 수입 문을 좁히면 중국산 물량이 아시아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고, 한국 시장에 중국산 저가 철강 유입이 오히려 늘어나 국내 가격을 끌어내리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올해 들어 국내 시장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 올해 1~2월 국내에 들어온 중국산 철강 수입액은 11억 6446만 달러(약 1조 715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2% 줄었고, 주요 제품 유통 가격도 열연 6.2%, 철근 13.2% 오르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중국이 올해 1월부터 약 300개 철강 품목에 수출 허가제를 도입하면서 대외 수출 물량 자체를 조이고 있는 데 따른 일시적 효과로 풀이된다.

EU의 새 관세 장벽이 본격 가동되면 이 흐름이 역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업계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세계철강협회(WSA)는 2026년 세계 철강 수요가 전년 대비 1%대 초반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으며, 한국과 일본은 건설·제조업 부진으로 수요 회복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발 가격 왜곡이 사라진다면 시장 본연의 경쟁 구도가 복원될 수 있다"며 "이제는 품질, 납기, 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가 쌓아 올린 50% 관세 장벽은 미국과 함께 세계 두 개의 거대 시장을 사실상 봉쇄하는 선이 됐다.

갈 곳을 잃은 중국산 철강이 아시아로 방향을 틀 때, 그다음 방어선 앞에 한국이 서 있다는 점에서 국내 업계의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해지는 국면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