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국제 원유시장, ‘공급 부족 공포→공급 과잉 우려’ 급반전

글로벌이코노믹

국제 원유시장, ‘공급 부족 공포→공급 과잉 우려’ 급반전

중동 원유 6000만 배럴 밀물…유가, 과잉 공포로 급락
호르무즈 재개 뒤 갇혔던 물량 시장 유입
중국 수요 부진에 현물시장 코로나19 이후 최약세


호르무즈 해협 재개로 중동 원유 공급이 되살아나면서 국제유가가 공급 부족 공포에서 공급 과잉 우려로 급반전하고 있다.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 재개로 중동 원유 공급이 되살아나면서 국제유가가 공급 부족 공포에서 공급 과잉 우려로 급반전하고 있다. 사진=챗GPT


국제 원유시장이 불과 몇 주 만에 공급 부족 공포에서 공급 과잉 우려로 급격히 돌아섰다.

미국과 이란의 평화 합의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재개되면서 전쟁 기간 묶여 있던 중동산 원유가 한꺼번에 시장에 풀리고 있어서다. 그러나 최대 수입국 중국이 아직 본격적으로 매수에 나서지 않으면서 원유 현물시장은 팬데믹 사태로 인한 수요 붕괴 이후 가장 약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이란의 합의 이후 갇혀 있던 600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시장에 유입되면서 글로벌 원유시장의 공급 과잉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고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8.78달러(약 10만5000원) 수준에서 거래됐다. 브렌트유 선물은 4월 말 고점 대비 43% 떨어지며 전쟁 기간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공급 부족에서 공급 과잉으로 급반전

블룸버그에 따르면 원유시장의 분위기는 빠르게 뒤집혔다.

3개월 전만 해도 세계 주요 실물 원유 벤치마크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업계 경영진들은 글로벌 재고가 위험할 정도로 낮아졌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이란전쟁은 역사상 가장 큰 원유 공급 차질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 시장의 초점은 정반대다. 전쟁 기간 묶여 있던 원유와 우회 수송 체계, 전략비축유 방출 물량이 동시에 시장에 남아 있는 가운데 중국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공급 과잉 가능성이 커졌다.

에너지 애스펙츠의 키트 헤인스 원유 책임자는 현재 시장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약세 쪽으로 기울었다고 진단했다.

이는 세계 경제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유가 급등이 다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는 크게 약해졌다. 그러나 산유국에는 정반대의 고민이 생겼다. OPEC+가 이제는 생산 회복 속도가 아니라 가격 방어를 위해 감산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 시험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갇혔던 원유 6000만 배럴 시장으로

공급 압력의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 안팎에 묶였던 원유다.

미국과 이란이 지난달 중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하기 전부터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은 선적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후 몇 주 동안 전쟁 발발 뒤 움직이지 못했던 600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시장에 흘러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미국의 군사 보호 아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일부 물량은 해협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을 활용하면서 전쟁 이전에 가까운 수출 수준을 회복했다. 이란산 원유도 미국의 제재 면제 조치로 다시 구매가 가능해졌다.

문제는 공급이 풀리는 속도에 비해 수요 회복이 더디다는 점이다. 전쟁 동안 시장은 중동산 원유 부족에 적응하기 위해 대체 공급망을 구축했다. 그런데 그 대체 흐름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갇혀 있던 원유까지 한꺼번에 풀리면서 일시적인 공급 과잉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빠진 시장, 갈 곳 잃은 원유

가장 큰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은 전쟁 기간 원유 구매를 크게 줄이며 글로벌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렸는데도 아직 의미 있는 규모로 매수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전쟁 전과 비교하면 중국의 원유 수입은 하루 약 500만 배럴 줄어든 상태로 전해졌다.

JP모건체이스의 나타샤 카네바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는 갇혀 있던 원유가 시장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지만, 중국이 사지 않으면 갈 곳이 제한된다고 분석했다.

이 현상은 가격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 정유사들이 주로 사는 중동·아프리카 원유 가격은 역사적 저점 수준까지 밀렸다. 중동산 대표 유종인 오만유 현물 가격은 두바이유 벤치마크보다 배럴당 4달러(약 6100원) 낮은 수준까지 내려갔다. 콩고공화국의 제노 원유는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14달러(약 2만1000원) 할인돼도 구매자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들은 중국 수요가 의미 있게 돌아오지 않는 한 추가 물량은 새로 형성되는 공급 과잉을 더 키울 뿐이라고 진단했다.

◇콘탱고 전환, 저장 유인 커졌다

선물시장도 공급 과잉 신호를 보내고 있다.

최근 미국, 유럽, 아시아의 주요 원유 선물 벤치마크는 모두 콘탱고 구조로 거래됐다. 콘탱고는 가까운 시점의 가격보다 나중에 인도되는 가격이 더 높은 상태다. 보통 현재 공급이 충분하거나 남아돌 때 나타나며 트레이더들이 원유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파는 유인을 키운다.

실물시장의 약세도 뚜렷하다. UAE산 원유는 미국까지 흘러가고 있고 하와이 구매자에게도 제안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원유를 실은 한 선박은 인도 해안까지 1만 마일 이상 항해한 뒤에도 2주 넘게 구매자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급이 모자랐던 전쟁 기간과 달리 현재 시장은 남는 물량을 어디에 팔지가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전략비축유 방출도 부담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도 공급 과잉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미국은 전쟁 기간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해 걸프만 지하 저장시설에서 기록적인 4억 배럴 방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고 중동산 원유가 시장에 풀리면서 이 방출 물량은 더 이상 필요한 위기 대응 수단이라기보다 공급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략비축유 방출은 다음 달 거의 중단될 전망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각국 정부가 소진된 비축유를 다시 채우기 시작하면 수요가 늘어 공급 과잉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중동산 원유 재유입, 미국 비축유 방출, 중국 수요 부진이 동시에 겹치면서 원유시장 약세가 심화되고 있다.

◇석유제품은 아직 강세

다만 원유시장 약세가 석유제품 전반으로 그대로 번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 디젤 선물은 원유보다 배럴당 약 50달러(약 7만7000원)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러시아산 제품 수출 감소와 수출 제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디젤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

미국 휘발유 시장도 아직 타이트하다. 정유사들이 최근 항공유 생산에 집중하면서 미국 휘발유 재고는 계절 평균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즉 원유 자체는 공급 과잉 신호를 보이지만 정제제품 시장은 품목별로 여전히 수급이 빠듯하다. 이는 유가 하락이 소비자 연료비 하락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OPEC+, 감산 질문 받을 차례

앞으로 시장의 핵심 변수는 세 가지다.

첫째는 미국과 이란의 불안정한 평화 합의가 유지될 수 있느냐다. 합의가 흔들리면 호르무즈 통항과 이란산 원유 수출은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둘째는 OPEC+가 가격 방어를 위해 생산 회복 속도를 조절할지 여부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OPEC의 6월 생산량은 여전히 2월 수준보다 28% 낮았다. 정상화가 진행되면 산유국들은 더 많은 물량을 되살릴 수 있지만, 시장이 이를 흡수하지 못하면 유가는 더 밀릴 수 있다.

셋째는 중국의 복귀다. 중국 정유사들이 낮아진 가격을 기회로 중동산 원유 매입을 늘리면 과잉 물량은 빠르게 흡수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이 계속 관망하면 공급 과잉 우려는 더 커진다.

리스타드에너지의 호르헤 레온 지정학 분석 책임자는 “호르무즈 원유 흐름이 정상화되면 OPEC+가 진짜 어려운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이제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감산할 의지가 있느냐라는 것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